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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목적없는 몰입’에 흠뻑 빠지고 보니

입력 | 2022-11-19 03:00:00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이나가키 에미코 지음·박정임 옮김/288쪽·1만6000원·알에이치코리아




일본 아사히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논설위원, 편집위원을 지내고 50세에 은퇴한 저자에겐 배우자도 자녀도 없다. ‘상사의 갑질’ ‘워라밸’이란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았던 그에게 텅 빈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은퇴 후 피아노를 만나게 됐다.

초등학생 때 처음 배운 피아노. 끝 모르게 이어지는 연습과 매서운 선생님을 견디지 못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성실하게만 하면 잘 칠 수 있겠거니 하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40년 만에 만난 피아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콩쿠르나 연주회, 음대 진학 같은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저자는 피아노와 울고 웃으며 한바탕 격투를 벌인다.

피아노를 통해 저자는 비로소 ‘목적 없는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직장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물을 내길 요구 받았던 저자는 삶의 패턴을 바꿔 인생을 즐기는 법을 찾는다. “인생에는 이런 세계도 존재했던 것이다. 목표가 없어도, 어딘가를 향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무작정 노력하는 그 자체로 즐거운 세계가.”

악보에 적힌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건반을 누르고, 노안 때문에 악보를 두 배로 확대해야 하는…. 이 웃기고도 슬픈(?) 해프닝들은 피아노에 얽힌 사연이지만 결코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피아노를 통해 얻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 태도가 담겼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