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품에 안고 지붕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해풍에 보채는 슬레이트 지붕을 묵직히/눌러놓으려는 것이다
나도 여울을 건너는 아비의 등에 업혀 있던 바위였다/세상을 버리고 싶을 때마다 당신은 나를/업어보곤 하였단다
노을이 질 무렵이면 혼자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그때 나는 새였다 새를 쫓는 고양이였다/지붕을 징검돌 짚듯 뛰어 항구를/돌아다니던 날도 있었다
지붕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내가 아직 내려오질 않는다/돌아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손택수(1970∼ )
인생은 돌발 상황을 두려워하지만 시는 의외성을 사랑한다.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다 좋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시에서는 우리의 짐작이 산산이 깨어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깨어짐이 멀리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안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처음 이 시를 읽을 때는 그 유명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아니라 하나도 안 유명한 ‘지붕 위의 바위’라는 의외성에 시선이 간다. 그리고 바위를 안고 지붕을 오르는 사람이 참 미련한 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선은 깊어진다. 바위가 사실은 자식이었고,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고 싶을 때마다 자식을 업어보며 위안을 삼았다는 부분에서는 좀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바위 같은 자식이 아직도 지붕 위에 앉아 있다는 대목에서는 같이 앉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