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무기 공급 약속 어긴 독일에 분노… ‘K-방산’ 대안 급부상
한화디펜스가 호주 수출용으로 개발한 보병전투장갑차 AS21.[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K2 전차 극찬한 루마니아 국방장관
바실레 든쿠 루마니아 국방장관(왼쪽)은 9월 23일 방한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국방협력증진 의향서(LOI)를 체결했다.[사진 제공 · 국방부]
현재 거론되는 4가지 분야의 방산 협력은 각각 전차, 보병전투장갑차, 자주포, 탄약 판매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차는 K2 전차 또는 폴란드 수출형 K2PL 전차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보병전투장갑차는 K21 또는 수출형 AS21 모델이, 자주포는 K9A2가 유력 후보다. 최근 루마니아 정부는 중부 도시 퍼거라슈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호환용 탄약 생산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설비 건설과 탄약 생산 과정의 해외 파트너로 한국 한화와 풍산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 국민에게 루마니아는 아직 생소한 나라다. 1990년 수교했지만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이렇다 할 교류는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루마니아를 소설 ‘드라큘라 백작’의 배경인 나라 정도로 인식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루마니아 국민 역시 한국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할 테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왜 갑자기 한국산 무기체계에 관심을 보이며 적잖은 물량의 무기를 사려고 하는 것일까.
불가피해진 루마니아 국방력 강화
루마니아군이 보유한 구형 T-55 전차.[뉴시스]
나토 최일선이라는 지리적 조건 덕에 루마니아는 상당한 군사 지원을 받고 있으나 이는 공짜가 아니다. 나토는 루마니아에 수년 전부터 국방예산 증액, 군사장비의 나토 표준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녹록지 않은 자국 경제 상황을 구실로 이 같은 압박을 외면했지만 이제 안보 상황이 달라졌다.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동유럽 정세가 크게 불안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근 해역에 부설한 기뢰가 떠밀려와 루마니아 군함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루마니아의 국방력 강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루마니아의 올해 국방예산은 70억 달러(약 9조2630억 원) 정도로 이 가운데 약 40%인 28억 달러(약 3조7000억 원)가 무기 구매 비용이다. 루마니아는 국방예산을 GDP의 3% 수준인 90억 달러(약 12조 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연평균 무기 구매 예산도 늘려나갈 예정이다. 이렇게 늘어난 국방비는 대부분 전투기, 기갑장비, 포병장비 구매 예산으로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장비를 구매할 것인지는 사실상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당초 루마니아는 노르웨이로부터 F-16 중고 전투기를 32대 구매해 당장의 전력 공백 소요를 메울 예정이었다. 지금은 고가의 신형 전투기 구매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2030년대 이후 순차적으로 F-35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갑·포병 같은 지상 장비 확충이다.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선 폴란드에 버금가는 규모의 지상군을 갖췄다. 400여 대의 전차와 1500여 대의 장갑차, 800여 문의 야포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질적 수준은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루마니아는 자국군의 가장 강력한 전력인 T-72 전차 60여 대를 우크라이나에 모두 공여했다. 현재 남은 전차는 T-55 계열 130여 대, T-55를 개량한 TR-85 계열 280여 대다. 사실상 현대적인 전차전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장갑차 전력을 살펴보면 스위스로부터 차륜형 장갑차 피란하 V 모델을 소량 도입하기는 했지만 70대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주력 보병전투장갑차인 MLI-84는 1960년대 생산된 BMP-1을 개량한 것으로 2024년까지 전량 퇴역 예정이다. 1000대가 넘는 차륜형 장갑차 전력은 대부분 BTR-60과 BTR-70 등 노후 모델을 기반으로 루마니아가 제작한 것이다.
독일 믿고 무기 공여했다 낭패 본 동유럽 국가들
루마니아 포병 전력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루마니아에는 제대로 된 자주포가 단 한 문도 없다. 그나마 최신식 화포가 M85로, 1980년대 초반 소련 152㎜ 2A26 견인곡사포를 자체 생산한 모델이다. 주력 화포는 최근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포신 폭발 사고를 일으키는 D-20의 루마니아 버전 M81이다. 루마니아는 포병 전력 현대화를 위해 2018년 미국에 54문의 M142 하이마스를 주문해 18문을 인도받긴 했다. 다만 탄약이 비싸 마치 전략자산처럼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는 실정이다.그러나 독일은 다른 동유럽 국가에 그랬던 것처럼 루마니아와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그리스에 유사한 형태의 무기 교환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로 장비를 받은 나라는 독일에 큰돈을 주고 신형 전차나 장갑차를 구매한 슬로바키아, 그리스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루마니아군 나토 표준화로 무기 수요↑
현대로템이 폴란드 수출용으로 개발한 주력 전차 K2PL.[사진 제공 · 현대로템]
루마니아군의 노후 기갑장비를 대체하는 소요는 전차 400여 대, 보병전투장갑차 140여 대, 보병 수송을 위한 차륜형 장갑차 1000여 대와 기존 노후 화포를 대체할 155㎜ 자주포 수십 문 규모다. 폴란드와 단순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규모다. 하지만 루마니아가 군사력 현대화와 나토 표준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이상, 장기적으론 그 규모가 훨씬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까지 한국산 기갑·포병장비로 무장하면 다른 동유럽 국가도 큰 관심을 보일 공산이 크다. 루마니아의 한국산 무기 구매 검토가 실제 계약과 납품으로 이어져 나토 최전선을 지키는 무기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로 통일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