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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배우며 꿈을 키워요” 요리대회 동상 받은 시골 중학교 학생들

입력 | 2022-11-21 03:00:00

해남군 두륜중 윤하선-김재현 군
요리대회 수상 경력자들과 경쟁
3년째 요리 지도한 장유정 강사
“제자들의 놀라운 성과에 감사”



11일 전남 해남군 미남축제장에서 열린 해남미남 전국 요리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두륜중 3학년 윤하선 군(왼쪽), 지도강사 장유정 씨, 두륜중 3학년 김재현 군(오른쪽)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륜중 제공


“동상, 두륜중학교 요리팀!”

11일 전남 해남군 미남축제 요리 경연장. 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장유정 지도강사(51)는 제자인 윤하선 군(15·두륜중 3학년)과 김재현 군(15·〃)의 이름이 불리자 그만 목이 메었다.

나이 어린 두 제자가 요리대회 첫 출전에서 상을 받다니 믿기지 않았다. 윤 군과 김 군이 요리 명인, 요리대회 수상 경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본선 경연에 오른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제자들과 두 달 동안 전복죽과 쌀 푸딩 등을 연구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두륜중은 전교생이 27명에 불과한 시골 학교다. 장 씨는 올 3월 신학기부터 이 학교의 청소년 미래 프로젝트에 초청받아 요리 동아리 지도를 했다. 아이들은 요리 수업을 시작할 당시 밀키트(식재료와 조리법이 담긴 요리세트)를 만드는 기존 요리체험을 떠올리며 지루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장 씨는 해남에 내려와 3년째 각급 학교에서 요리교실을 열었다. 늘 그랬듯이 장 씨는 두륜중에서도 아이들 스스로 요리사가 되도록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재료, 소스를 만들어 요리를 조리하게 하자 점차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는 되도록 시골 학교 초청에 응하는 것이 좋았다. 강사 초빙 프로그램 기회가 적은 시골 학교일수록 학생들 표정에는 “이런 것 처음 해봐요”라는 신기함이 가득했다.

장 씨의 요리사 경력은 화려하다. 호주 월리엄 블루 칼리지 학부에서 관광경영학 학사, 웨스턴 시드니 대학에서 국제관광&호텔경영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이탈리아 미슐랭스타 레스토랑을 거친 경력도 있다. 호주에서 귀국한 뒤 경주대 외식조리학과에서 외식전문가 강사를 했고 해남의 공유주방 어린이 요리강사, 공공도서관 음식 인문학 강사로 활동했다.

그가 해남에 머물게 된 것은 지인 소개로 2019년 해남군 공공도서관의 음식 인문학 강의인 ‘요리 문화여행, 땅끝에서부터’를 진행하면서다.

두륜중과의 첫 인연은 지난해 겨울 수제 햄버거 만들기를 하면서부터다. 수제 햄버거 수업을 받은 아이 중 한 명이 “1∼3학년 학생 7명이 요리교실을 신청했는데 선생님을 모시고 싶다”며 먼저 연락해 왔다.

장 씨는 제안에 흔쾌히 응하는 대신 미남축제 대회 출전을 제안했다. 목표가 있어야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요리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미남축제 요리경연 대회 두 달 전부터 1주일에 두 번 요리 연습을 했다. 대회 2주일 전에는 매일 요리를 만들었다. 장 씨는 지인들 도움으로 부족한 식재료를 충당했다.

장 씨는 정성을 다해 가르쳤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불 조절도 못 하던 아이가 정확한 조리 시간을 지켜냈고, 채를 듬성듬성 썰던 아이는 칼날이 비칠 정도로 얇은 채를 만드는 등 학생 요리사로 변신했다.

대회에 입상한 윤 군은 “요리를 하는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도전이었다”며 “또래 학생들이 요리를 통해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이런 변화가 감사하기만 하다. 해남에서 요리 수업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 상당수는 어려운 여건으로 힘들어했다. 꿈을 가져야 할 나이에 “저는 어차피 최저 시급밖에 못 받고 일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요리는 학생들에게 꿈과 도전을 심어주는 촉매제가 됐다. 장 씨는 “점차 요리를 자신의 미래 직업으로 꿈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아이들의 희망대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는 동아리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윤채현 두륜중 교장은 “요리대회에 중3 학생들이 출전해 입상한 것은 장유정 강사가 개발한 특색 있는 음식 메뉴가 한몫했다”며 “요리 동아리를 상설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