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FTX, 자산 매각 나섰지만 재무제표 불분명… 자산-빚 파악안돼
임직원-피해자 등 거의 미국인… 美와 관할권 싸고 법적다툼 전망
파산한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자산 매각을 준비하고 나섰다. 100만 명에 달하는 채권자에게 진 빚을 청산하기 위한 기초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불분명하게 기재된 재무제표 탓에 정확한 FTX 보유자산이 얼마인지, 갚아야 할 빚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바하마가 해킹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FTX 가상자산을 압류했다고 뒤늦게 밝힌 가운데 규제 관할권을 두고 미국 규제당국과 법적 다툼이 이어질 전망이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코인 대출업체 블록파이도 파산을 준비하는 등 FTX 파산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가상화폐 시장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 사라진 가상자산, 알고 보니 바하마가 압류
청산인으로 지목된 존 레이 FTX 최고경영자(CEO)는 19일(현지 시간) “FTX 자회사 가운데 규제를 받으며 책임경영을 실시해온 곳도 여럿 있다”며 “우선 (이들 자회사) 매각 및 구조조정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FTX는 전 세계 36개 은행에 216개 계좌가 있으며 총 현금 잔액은 5억6400만 달러(약 7600억 원)로 파악됐다. 다만 이 자산을 언제 매각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다. FTX 채권자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FTX 고객 계좌에서 약 80억 달러(약 10조7400억 원)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자산 정리 과정에서 바하마와 미국 사이에 관할권을 놓고 법적 다툼 등 충돌도 예상된다. FTX 본사와 자회사 ‘FTX 디지털 마켓’은 바하마에 있지만 창업자를 비롯한 임직원 및 피해자는 거의 미국에 있는 미국인이다. 파산 신청도 미 델라웨어법원에서 미국 법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바하마 당국은 17일 FTX 거래소에 있던 ‘FTX 디지털 마켓’의 가상화폐 수억 개를 이전시켜 압류했다고 밝혔다. FTX 파산 신청 직후 6억6200만 달러(약 8700억 원)어치 가상자산이 유출돼 해킹 의혹이 일었는데 알고 보니 바하마 당국이 압류한 것이었다.
바하마 당국은 압류 자산 규모는 정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바하마에 있는 ‘FTX 디지털 마켓’은 미국 파산법에 따른 파산보호 절차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FTX 디지털 마켓은 15일 뉴욕 연방법원에 따로 파산신청한 상태다.
○ 다른 가상화폐 업체로 위기 번진다
FTX 파산 사태가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 및 가상화폐 대출업체 부실로 이어지면서 파산 후폭풍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 월가 투자은행들은 세계 2위 가상화폐 거래소이자 미국 최대 거래소인 상장기업 코인베이스의 투자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날 코인베이스에 대해 “FTX 붕괴로 코인베이스가 단기적, 중기적으로 여러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대출업체 블록파이는 FTX 파산 직후 고객 인출을 금지하면서 파산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대출 ‘큰손’으로 알려진 제네시스도 최근 신규 대출 및 상환을 금지했다.
외신은 연일 FTX 경영 실패를 지적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FTX 고객 계좌에서 80억 달러가 비어 있었는데 창업자 뱅크먼프리드는 이를 ‘사고’라고 했다”며 “그는 고객 돈이 FTX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로 보내진 것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또 뱅크먼프리드를 비롯해 FTX 핵심 경영진은 바하마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기숙사처럼 사용하며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회계 처리하지 않고 감사도 받지 않았다. 분식회계 대명사가 된 엔론 청산인이기도 한 레이 CEO는 “40년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기업 통제에 실패한 곳은 처음 본다”고 밝혔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