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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산책하듯 편안”… 작품처럼 주목받는 ‘전시공간디자인’

입력 | 2022-11-21 03:00:00

전문가 5명이 꼽은 2022년 인상적 전시 공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문신: 우주를 향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전시작품이다. 더불어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만족도는 크게 달라진다. 최근 미술계에선 벽과 조명, 음향 등 전시공간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전시공간 전문가 5명에게 올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중 공간디자인이 인상적인 전시를 선정해 달라고 했다. 전시 규모와 관람객 수를 고려해 공공 전시를 대상으로 했다.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기획관, 김성태 리움미술관 수석디자이너, 이대형 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전시디자인회사 ‘시공테크’의 오서현 선임디자이너, 공간디자인스튜디오 ‘논스탠다드’의 이세영 대표가 공간디자인이 빼어난 전시를 각각 3개씩 꼽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됐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문신: 우주를 향하여’(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내년 1월 29일까지)가 3명으로부터 호평을 받아 공간디자인이 뛰어난 전시로 꼽혔다. ‘대지의 시간’(국립현대비술관 과천)과 ‘사유의 방’(국립중앙박물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서울시립미술관)도 각각 2표씩 받았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조각가 문신(1922∼1995)의 개인전은 “공원을 산책하듯 작품을 여러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한 디자인”(김용주 기획관)인 데다 작품과 작가를 고루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성태 디자이너는 “작품과 진열장 재질을 적절하게 맞춰 문신 조각의 특징인 물성을 잘 강조했다”고 말했다. 오서현 디자이너는 “곡선형 디자인을 통해 작품이 우주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처럼 보이게 했다”며 “평생 우주를 탐구한 작가의 세계관을 함께 사유하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던 ‘대지의 시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올해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단체기획전 ‘대지의 시간’은 생태라는 주제를 잘 살린 독창적인 기획이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대형 전 감독은 “공간디자인을 통해 생태학적 가치를 말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며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벽을 없앴고, 작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출이 돋보였다”고 했다.

다만 가벽 대신 놓은 구형의 반사체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렸다. 오서현 디자이너는 “공간과 작품, 관람객을 한데 비춰 관람객 또한 생태담론의 주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세영 대표는 “조형물이 작품보다 압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2점의 상설전시관을 재개편한 ‘사유의 방’은 작품과 공간디자인의 일체감이 뛰어난 사례로 꼽혔다. 김용주 기획관은 “긴 진입로와 흙을 사용한 벽의 재질과 색감, 미세하게 기울어진 바닥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자연스레 마주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끝난 서울시립미술관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도 주목받았다.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회고전으로 “과거로 돌아간 듯한 상상을 펼치게 만들었다. 권진규라는 인물에 대한 내러티브가 돋보였다”(김성태 디자이너)는 평을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내년 3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오늘 본 것’,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면무도회’, 부산시립미술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도 좋은 전시디자인으로 언급됐다. 전문가들은 “전시디자인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획 의도를 입체적, 철학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