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and:어둠과 빛…’展 조덕현 작가 김용택 시인 미발표 28작도 선보여
춘포 주민이었던 이춘기가 30년간 써온 일기 중 일부를 스캔해 삼각기둥에 붙인 조덕현 작가의 설치작 ‘&diary’(2022년). 조 작가는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이춘기라는 인물을 발견했고, 이 인물이 전시를 구성하는 데 큰 실마리가 됐다”고 말했다. pkm갤러리 제공
전북 익산시 춘포면에는 108년 된 옛 도정공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춘포 일대 땅 등을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모리다치(1883∼1970)가 세운 정미소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1998년 폐업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돼 있던 공장이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기억’을 소재로 사진, 회화 등을 작업해온 조덕현 작가(65)다. 조 작가는 지난해 7월 15일 출사를 나갔다가 공장을 발견했고 소유주인 서문근 씨와 논의해 전시를 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올해 4월 23일부터 개인전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기간은 내년 4월 22일까지 무려 1년이다.
총 54점이 놓인 전시장은 도정시설이 있었던 중앙 공간과 좌우에 각각 놓인 창고 세 칸과 공장 앞에 놓인 정원 등 4307m²(약 1300평) 규모의 공간을 모두 활용했다. 16일 만난 조 작가는 “이 공간은 격변의 세월을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잊혀진 공장의 공간성과 이 지역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인생 등을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춘기라는 무명인의 예술은 동시대 시인의 시로 이어진다. 조 작가는 김용택 시인(74)을 떠올리고 올 1월 연락을 취했다. 시인의 허락하에 작가는 미발표 시집 2권 중 28작을 10월부터 메인 전시장과 정원에 선보였다. 특이한 점은 투명 아크릴 판에 새겨져 가까이 가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지금 시대의 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그런 시”라고 말했다.
시는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정원 곳곳 풀밭 위에 마치 화분 같아 보이는 그릇 바닥에 시가 새겨져 있는 작품 ‘시분(詩盆)’이 놓여 있다. 작품 안에 고인 빗물 위로는 낙엽, 꽃잎이 떠다니고 그 사이로 시가 보인다. 김 시인은 “여린 시들이 자연에 묻히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시 옆 잎 하나, 꽃 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다. 역시 예술은 죽어 있는 것들을 살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중 약 30점은 전북 완주시 오스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5000∼1만 원.
익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