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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범 제압한 퇴역군인 “총성에 전투모드 돌입” [사람, 세계]

입력 | 2022-11-23 03:00:00

美 클럽 총격사건 범인 맨손 제압
“유족-생존자들, 전쟁 속에 살 것”



퇴역 군인 리처드 피에로가 21일 취재진에게 콜로라도 클럽 총격 사건 범인을 현장에서 제압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콜로라도=AP 뉴시스


“총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전투 모드로 돌입하게 됐어요. 그 남자가 우리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19일 밤 미국 콜로라도주의 성소수자 전용 나이트클럽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던 순간 리처드 피에로(45)는 반사 신경이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당시 그는 부인, 딸,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딸 친구의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피에로는 객석에 있던 가족들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뒤 소총을 들고 난사하던 앤더슨 리 올드리치(22)에게 다가갔다. 피에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4차례 육군 장교로 파병돼 전투를 치렀던 퇴역 군인이었다. 15년간의 군 복무 후 2013년 전역한 그는 방산업체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지만 몸은 전투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피에로는 거구의 범인을 뒤에서 기습해 넘어뜨린 뒤 꼼짝 못 하도록 올라탔다. 범인은 소총이 바닥에 떨어져 손에 닿지 않자 방탄조끼 안에 넣어놨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피에로는 범인 손에서 권총을 낚아챈 뒤 총 손잡이로 범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피에로는 21일 미 뉴욕타임스(NYT)에 “머릿속에 가족과 이웃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몇 분 뒤 경찰이 출동했을 때 피에로는 범인의 총을 든 채 손이 피범벅이 돼 있었다.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오인해 수갑을 채우고 경찰차에 1시간 넘게 가뒀다. 피에로가 풀려나 범행 현장으로 왔을 때 부인과 딸은 다쳤고, 딸이 6년간 사귄 남자친구는 숨져 있었다. 피에로의 민첩한 대응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몇 분간의 총기 난사로 클럽에서 5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이날 클럽에서 처음 드래그쇼(여장 남자의 공연)를 본 피에로는 NYT에 “나는 이 친구들이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걸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전장에서) 싸웠던 이유”라고 말했다. 군 복무 중 총상을 입었던 그는 “그때의 끔찍했던 경험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며 “이번 사고의 유족과 생존자들은 남은 날들을 ‘전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울먹였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