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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3급 성폭행 혐의 70대 징역 4년→무죄, 왜?

입력 | 2022-11-23 06:08:00

ⓒ News1 DB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78)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대법원은 지적장애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약한 정도의 장애가 있더라도 가해자를 장애인 준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피해자가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피고인이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 점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A씨는 2019년 2월 집 근처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지적장애 3급 장애인 B씨(40대)를 5차례 간음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해 피해자를 간음했다’며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B씨가 의사소통이나 일상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한 상태였고,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봤다.

1심은 “장애인준강간죄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B씨의 지적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특별히 보호해야 할 정도로 장애가 있으면 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 때문에 항거불능이나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는 점과 A씨가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모두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A씨가 B씨에게 위협적인 행위를 한 정황을 찾아볼 수 없고, B씨가 A씨를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친분·호감 내지는 신뢰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이 상고장을 내 A씨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우선 대법원은 2심과 달리 B씨가 사건 당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표현·행사하지 못하는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사 결과 B씨의 지능지수는 57, 사회성숙도지수는 14로 나왔다. 지능지수에 비해 사회지수가 매우 낮은 점에 비춰 B씨에게 대인관계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특히 부족했던 셈이다.

B씨는 지인에게 울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A씨와의 성행위를 원하지 않았지만 A씨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고, 경찰 신고가 이뤄진 뒤에도 A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항거불능 여부는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비롯해 피고인과의 관계, 범행 당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지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정신적 장애와 그로 인한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를 인정하지 않은 2심의 판단에는 잘못이 있지만, A씨의 고의를 인정하기엔 부족하므로 무죄 판단을 결과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의 나이, 두 사람의 관계, A씨가 용돈을 주는 등 호의적인 행위를 한 뒤 성관계 요구를 하는 것에 B씨가 거절하지 못했던 점을 종합해보면 A씨로서는 B씨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상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했다”며 “앞으로 유사한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