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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러 점령 영토 55% 탈환”…갈 길 먼 겨울 전투 향방은

입력 | 2022-11-23 10:05:00


우크라이나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9개월 동안 지속돼온 전쟁에서 여러 차례 러시아군에 패배를 안겼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의 5분의 1을 러시아군이 점령한 상태다. 우크라이나가 탈환한 영토는 러시아가 당초 점령했던 지역의 55% 가량이다.

우크라이나군은 1000km에 이르는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남부와 북·동부에서 수세지만 단 한 지역, 동부의 바흐무트를 계속 공격하는 중이다.

공세를 취하는 우크라이나군은 앞으로의 전쟁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입장이다. 점령지 탈환을 위해 더 진격할지, 아니면 러시아가 바라는 대로 겨울을 맞아 소강상태로 접어들 지를 결정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추가로 진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후퇴한 러시아군이 밀집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지역을 공략해야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드니프로강 하류의 습지와 삼각주 섬 지역을 보트를 타고 공격하는 중이다. 자포리자 지역에선 눈이 쌓인 평원에 구축된 참호선을 공략하고 있고 동북부 침엽수림 지대인 스바토베-크레민나 연결 전선에선 소모가 큰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다.

헤르손을 탈환한 직후 현지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헤르손 주청사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면서 1942년 영국군이 엘 알라메인 2차 전투에서 승리한 뒤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했던 “전쟁 시작의 끝”이라는 선언을 패러디했다. 2차 세계 대전은 이후 3년 동안 이어졌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헤르손 탈환은 전쟁 종식의 시작”이라고 표현을 바꿔 전쟁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비켜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황과 전망을 진단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전선 상황

겨울 전쟁이 막 시작됐다. 최전선의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스 조운즈 국제전략연구소(CSIS) 국제안보프로그램 책임자는 “러시아 지상군 부대가 사기 저하, 빈약한 전투력, 미흡한 훈련, 부족한 보급, 부패, 나아가 과도한 음주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썼다.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하면서 남부의 러시아군 보급선 대부분이 우크라이나군 포격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은 드니프로강 동안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또 러시아군은 병력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징집병을 투입하고 있다. 헤르손에서 철수한 수만 명의 병력을 북동부에 배치해 도네츠크 지역 공세를 강화하고 러시아와 크름반도를 잇는 육로에 대한 방어도 강화하고 있다.

겨울의 추운 날씨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늦추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못한 러시아군에게도 큰 부담이다. 또 겨울이 끝나지 않은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돼 양국군 모두 넓은 스텝 지대에서 벌어지는 겨울 전투에 익숙하다.

◆제2의 전쟁, 인프라 스트럭처 공격

러시아 지상군은 남부와 동부에서 고전하지만 미사일과 드론을 사용해 우크라이나 인프라스트럭처를 파괴하는 ‘제2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켜 전쟁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지난 주 러시아는 발전소, 지하철, 천연가스 설비, 상하수도 시설을 대대적으로 폭격했다. 이전까지 보기 힘든 규모였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유리 이나트 대령은 지난 21일 군은 자체 발전 능력이 있기 때문에 국가 전력망 파괴가 전투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 러시아의 인프라스트럭처 공격이 우크라이나 군인들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켜 적개심만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의 공습으로 대공방어 능력이 소진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러시아 로켓 1발 당 요격 미사일 2발을 발사한다면서 더 많은 요격 미사일과 대공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값싼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대공 능력을 소진시킨다고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이번 주 대대적인 공습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해 협상에 응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도 인정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주 인프라스트럭처 공격이 우크라이나가 “협상에 응하지 않는데 따른 대가”라고 말했다.

◆남부 깊숙이 공격하는 우크라이나군

러시아의 공격에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협상에 응할 기미는 전혀 없다. 오히려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주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드니프로강변에서 우크라이나군 곡사포 사거리 밖인 15~25km 뒤로 물러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의 정밀 장거리 미사일은 이보다 더 깊숙한 크름반도 북쪽의 모든 러시아 점령지를 공격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크름반도 북쪽에 참호를 파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군은 또 전쟁 초기 점령한 멜리토폴 인근에도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멜리토폴은 남부의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멜리토폴로 진격하면 남부와 동부의 러시아군을 분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치열한 돈바스 전투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세를 만회하려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합동참모본부 소속 올렉시 흐로모우 장군에 따르면 동부 전선 전투가 가장 치열하다. 지난 12~17일 사이에만 500여 차례의 교전이 있었다고 했다.

돈바스 지역 전투는 크게 두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곳은 스바토베-크레미나 보급선을 따라 구축된 침엽수림 지대 참호선이다. 다른 한 곳은 바흐무트로 양측이 고지대를 차지한 채 분지인 시가지를 가운데 두고 대치하고 있다. 양측 모두 바흐무트와 인근 마을에 집중 포격을 가하고 있다.

바흐무트의 전략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군으로선 바흐무트를 점령하면 돈바스 다른 도시로 진출하는 것이 쉬워진다. 또 이곳에 배치된 러시아 와그너 용병그룹의 설립자 예프게니 프리고진이 다른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패배를 만회해 능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으로선 싸워보지도 않고 탈환한 도시를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바흐무트 근처 세베로도네츠크에서 한달여 동안 저항한 끝에 러시아군에 내준 일과 아직도 우크라이나군이 내주지 않고 있는 남부 미콜라이우의 상황이 이를 웅변한다.

◆가능성 적은 휴전협상 재개 전망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 주 “모든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계속 승리하고 있고 러시아군이 매번 패퇴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군이 여전히 상당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협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밀리 합참의장은 “탈환한 영토가 작지 않다. 앞으로 몇 주 동안은 러시아군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는 한 탈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영토를 양보하고 휴전하는 건 애당초 협상 대상이 아니다.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협상 합의를 준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19일 핼리팩스 국제안보포럼 화상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면서 “질문을 제대로 해 달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느냐고”라고 말했다.

그는 휴전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서 러시아가 공격을 재개할 시간만 벌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도덕하게 타협하면 더 많은 유혈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