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 네바다주 대법관에 임명됐다. 스티브 시설랙 네바다 주지사는 21일(현지 시간) “패트리샤 리(47) 변호사를 주 대법관에 임명했다”며 “폭넓은 능력과 전문적인 경험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네바다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 대법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신임 대법관은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힘들었던 가정사를 밝히며 “아버지가 흑인이어서 나의 출생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혼혈이란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만 4세 때 가족들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로 이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역 후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그가 7세 때 부모가 이혼했다.
장녀인 리 대법관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어머니 대신 두 남동생을 돌보며 힘겹게 성장했다고 답변서에 썼다. 7살 때부터 직접 기초생활수급 서류를 작성했으며, 1년에 2~3차례 집을 옮겨야 했다. 가족이 노숙을 하다 가까스로 쉼터에 입소했을 땐 ‘이제야 집이 생겼다’며 안심했다고 한다.
리 대법관은 “어린 시절 힘든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며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경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리 대법관의 임기는 2025년 1월까지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9월 사직한 애비 실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정원이 7명인 네바다주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지만 결원이 생기면 주지사가 임명하는 후임자가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