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베 르나르 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 뉴시스
에르베 르나르 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54)은 서른 살이던 1998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그는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청소부 일을 마치면 자신이 수비수로 뛰던 프랑스 5부 리그 팀 드랴기냥 훈련장을 찾아가 선수들과 함께 공을 찼다.
문제(?)는 축구보다 청소에 더 재능을 보였다는 점이다. 곧 청소 업체 대표가 되면서 ‘부업’이 필요한 축구 선수들을 청소부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포츠 에이전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게 기회가 됐다. 한 에이전트가 ‘중국 상하이 팀을 맡게 된 클로드 르 로이 감독(74)이 코치를 구하는데 혹시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르 로이 감독은 카메룬과 세네갈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아프리카 축구의 전설’로 평가 받던 인물이었다. 르나르 감독의 대답은 물론 ‘위(oui·좋다)’였다.
르나르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축구협회도 반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신태용 감독이 물러나자 르나르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로 선정한 것이다. 르나르 감독도 한국행 의지가 강했지만 모로코축구협회와의 계약 문제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부터 르나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사우디아라비아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전반 파상공세를 1실점으로 묶은 뒤 결국 2-1 역전승을 이뤄냈다. 르나르 감독은 “우리는 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야기를 만들었다”면서도 “축하할 시간은 20분이면 충분하다. 아직 2경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6일 오후 10시 폴란드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도하=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