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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녹화공작’ 1984년 폐지했다더니… 5년 더 자행

입력 | 2022-11-24 03:00:00

보안사 심사과→정보처로 부서 옮겨
피해자 1192명서 1729명 더 늘어
“휴가 때마다 학내 동향 보고 강요… 40년간 트라우마… 관련자 사과를”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만든 ‘좌경의식화 불순분자 대상 대공활동지침’ 문건(왼쪽 사진)과 보안사 대공처가 작성한 A 씨 관련 보고. ‘녹화공작’ 대상자로 강제 징집됐던 A 씨는 휴가 기간에 대학 내 첩보를 입수하라고 강요당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A 씨 제공


운동권 대학생을 징집해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던 ‘녹화공작’이 기존 알려졌던 것과 달리 1980년대 말까지도 자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 1700여 명도 새로 파악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는 23일 서울 중구 위원회 회의실에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 진실 규명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1984년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던 녹화공작이 ‘선도업무’로 명칭만 바뀌어 1989년까지 계속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선도업무’ 명칭으로 공작 이어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는 2007년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1984년 12월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심사과가 해체되면서 녹화공작이 폐지됐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소관 부서가 보안사령부 정보처로 바뀐 채 녹화공작이 지속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보안사령부 정보처가 1985년 제작한 ‘선도업무 활동 지침’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서 정보처는 ‘특변자(특수학적변동자) 관련 업무가 보안 노출 등 새로운 학원가 쟁점으로 부각, 문제화되고 있어 현행 지침을 재검토 보완한다’고 했다. 특변자는 대학에서 퇴학이나 강제휴학 등을 당한 운동권 대학생을 뜻한다. 보안사령부는 이후 녹화공작을 ‘선도업무’로, 특변자를 ‘선도대상자’로 명칭만 바꾼 채 공작을 이어나갔다.

위원회는 보안사령부가 1986년 만든 ‘군입영 대상 문제학생 관리지침’ 문건도 확보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학교가 ‘문제학생’ 징계 결과를 문교부(현 교육부)에 보고하면 문교부가 병무청에 알려 징집하도록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사령부는 1987년 5월에도 ‘선도업무활동지침’과 ‘선도대상자 심사운영위원회 운영내규’ 문건을 제작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녹화공작 대상자는 총 2921명으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가 확인했던 1192명보다 1729명 많았다. 명단에는 최근 강제징집 뒤 프락치 활동 의혹이 제기된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도 포함됐다.
○ “폭행, 밀고 트라우마 40년 동안 이어져”
40년가량 지난 오늘날까지도 당시 녹화공작으로 입은 정신적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피해자 A 씨(62)는 1982년 3월 학내 시위에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이유로 징집돼 경기 연천군 전방부대에 배치됐다. 그해 9월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간 그는 20여 일간 폭행을 당하며 ‘자술서’ 작성을 강요받았다. 이후 부대로 복귀했지만 첫 휴가를 앞둔 그에게 사단 보안대원이 “학내 동향을 파악해 오라”고 지시했다. 이후 A 씨는 전역할 때까지 휴가 때마다 학내 동향을 보고해야 했다.

A 씨는 “학회 동료들을 만나 받은 지시 내용을 털어놓고, 부대에 돌아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과 사건만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일이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했다. A 씨는 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고, 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A 씨를 녹화공작 피해자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녹화공작은 국방의 의무를 악용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공권력의 중대 인권침해”라며 “공작과 관련됐던 국방부와 행안부, 경찰청, 교육부 등은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