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을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뀐다.”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스(39)는 그의 기술을 의심하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달랐다. 피 한 방울이면 250개의 질병을 진단한다는 키트는 엉터리였고,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홈스가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았다면 샘 뱅크먼프리드(30)는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다. 그가 창업한 FTX가 파산을 신청했다. 한때 천재로 불렸던 두 기업가의 몰락이 실리콘밸리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이들이 쓴 성공 신화에는 공식이 있다. 우선 ‘천재’로 포장할 수 있는 명문대 간판을 달았다. 홈스는 스탠퍼드대를 중퇴했고 뱅크먼프리드는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했다. 젊은 혁신가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해 미디어 달링(Media Darling·미디어가 선호하는 유명 인사)으로 불린 것도 같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젊은 여성인 홈스는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중저음의 목소리를 냈다. 알고 보니 금발은 염색이었고, 목소리는 연기였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후줄근한 반바지 차림을 한 뱅크먼프리드는 정보기술(IT) 업계 괴짜 천재의 전형이다.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계와 문화계 슈퍼스타와 밀착했던 행보도 공통점이다. 테라노스의 이사회는 헨리 키신저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거물들로 구성됐다. 공교롭게도 홈스의 사기행각은 슐츠 전 국무장관의 손자이자 전 직원이었던 타일러 슐츠의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뱅크먼프리드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농구선수 샤킬 오닐 등과 공개적으로 친분을 과시했다. 포장을 벗겨낸 이들의 모습은 악독했다. 홈스는 회사의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들을 위협하거나 해고했고, 뱅크먼프리드는 털털한 이미지와 달리 미팅에서 욕설을 참지 않았다는 폭로가 이어진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