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한센, 노는 아이들 ‘엥하베 광장’, 1906∼1908년.
햇살이 비추는 날, 여자아이들이 밖에 나와 신나게 놀고 있다. 연초록으로 뒤덮인 나뭇잎과 아이들 얼굴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덴마크 화가 페테르 한센이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다. 깔깔대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림 바깥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한센은 덴마크 퓐섬 출신으로 생애 절반을 이 섬에서 활동했기에 ‘퓐 화가’라 불렸다. 그는 코펜하겐 기술학교를 다닌 뒤 ‘예술가들의 자유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 학교는 덴마크 왕립 미술학교의 보수적인 화풍에 대항하기 위해 몇몇 화가들이 설립한 미술 대안학교였다.
당시 여느 북유럽 화가들처럼 그 역시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여행했고,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에 영향을 받았다. 1905년부터는 고향 섬에서 여름을 보내며 시골 풍경을, 겨울에는 코펜하겐에 머물며 거리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이듬해, 비보가 날아든다. 1909년 7월 바르셀로나 총파업을 이끌었던 장남 다비드가 군에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들이 스페인 아나키스트 운동의 위대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슬픔을 삭일 도리가 없었다. 이후 한센의 그림에선 밝은 색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아들을 잃은 고통을 그림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식의 죽음은 영원한 트라우마다. 불과 한 해 전 한센은 집 앞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비극 이후 어찌 행복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이 그림이 생애 가장 찬란한 봄날의 초상이 될 줄 화가는 상상이나 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