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을 무릅쓰자, 부장(副將)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하여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아!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최후를 담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가 고국에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2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본에서 환수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를 공개했다.
대통력은 오늘날 달력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책력(冊曆)으로 농사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지침으로 활용돼 왔다. 이번에 환수된 유물인 경자년 대통력은 1599년 간행됐다. 김문경 교토대학 명예교수의 제보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정보 입수 후 수차례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지난 9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소장자는 책력에 자기 일정이나 감상을 적어둔다. 이 유물도 그 여백에 묵서와 주서로 그날 날씨,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이 기록됐다.
문화재청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 정보를 바탕으로 서애 류성룡의 문집 ‘서애집’ 중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와 내용을 대조한 결과, 서애 류성룡의 수택본으로 추정했다.
특히 가철된 표지에 임진왜란기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부하 장수들의 만류에도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탄환을 맞고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도 담겨 특별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최 청장은 “임진왜란기 정치와 군사 전략가로서 활약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기록 뿐만 아니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사 상황 등 경자년에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들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특히 류성룡 선생의 종손가 소장 자료들인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 빠졌던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기록문화 유산의 연구와 활용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제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상근전문위도 이날 언론공개회에서 이 유물에 대해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 중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갑오’ 등 6책과 동일가치를 지녔다”며 “경자년 대통력은 유일본이자 류성룡 선생의 수택본으로 귀중본”이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존관리하면서 조선시대 과학문화재들과 류성룡 관련 원천 자료로서 연구·전시에 활용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