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독일-일본전. 독일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일본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와 경합을 벌이며 볼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아사노 앞에 끼어들어 겅중겅중 뛰면서 골라인까지 막아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인 뤼디거의 키는 190cm로 아사노보다 17cm나 크다. 아사노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자신의 타조걸음을 못 쫓아온다고 조롱한 것인데 자칫 특정한 신체적 조건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뛰었던 디트마어 하만 씨는 그날 독일축구연맹 트위터에 이 장면에 대해 재미있어 하는 글들이 올라온 걸 보고 “수치스럽다”며 분노를 토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상대를 깔보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 밤 누구라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뤼디거만이 아니다. 프로 정신에 흠결이 있다. 그렇게 하는 건 오만이다”는 글을 올렸다.
▷정작 일본인의 반응은 그리 격렬하지 않다. 일본어로 된 유튜브를 보면 “뤼디거는 원래 뛰는 방식이 저렇다” 혹은 “빨리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려면 저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는 체하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려 있고 그런 댓글에 대체로 가장 많은 ‘좋아요’ 반응이 달려 있다. 자신들이 조롱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이한 심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
▷뤼디거가 아사노를 조롱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 후반 19분경이다. 그러나 후반 38분경 바로 그 아사노가 뤼디거가 보는 앞에서 골키퍼와 골포스트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지나가는 면도날 같은 슛으로 독일을 2 대 1로 격파하는 역전골을 만들었다. 독일은 경기에서만 진 것이 아니다. 매너에서도 졌다. 하만 씨가 지적했듯이 뤼디거만이 아니라 독일의 축구팬들은 그것을 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