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교수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서울캠퍼스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 드라이브 샷을 하고 있다. 문 교수는 매일 걷는 것으로 체력을 다지고 있어 아직 학부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우다 쓰러졌다.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다. 회복된 뒤로 축구공을 늘 메고 다니며 공을 차고 몸을 다졌다. 대학원 시절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50세를 앞둔 2000년부터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걸었다. 서울 압구정 집에서 연구실이 있는 강북 홍릉까지 12km를 매일 걸어 출근했다.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일흔의 나이에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테니스를 격렬하게 칠 수 있는 원동력에 걷기가 있다고 했다. 20여 년 전부터 차까지 팔고 속칭 ‘BMW(버스 메트로 워킹)족’으로 매일 걷는다.
“제가 마라톤 풀코스를 40회 정도 달렸어요. 그런데 완주를 위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입니다. 전 걷는 것으로 마라톤 훈련을 대신했어요. 그렇게 4시간 20분에서 30분에 완주했습니다. 대회 2개월 전부터 많이 걸었을 땐 3시간 47분에 완주하기도 했죠.”
3년 전 마라톤 질주를 그만뒀던 문 교수는 올가을 다시 풀코스를 달렸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완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려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다시 달렸다”고 했다. 그는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 50분대에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당분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등 이웃 돕기에 썼다.
가을 교정을 걷고 있는 문송천 명예교수. 그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고, 2000년부터 ‘1미터 10원’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또 방송활동을 통해 번 거액도 백혈병 어린이 등 이웃 돕기에 보탰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경기 과천으로 이사를 간 문 교수가 버스 타고 압구정까지 가서 홍릉까지 약 12km를 매일 걷는 이유도 도전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걸을 수 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페크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