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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최후’ 담긴 류성룡 일기 日서 귀환

입력 | 2022-11-25 03:00:00

“부장들 만류에도 출전… 이윽고 날아온 탄환에 전사했다, 아아!”
1600년 작성 추정 ‘경자 대통력’
203일간의 날씨-약속-병증 등 적혀… 충무공 기록엔 다양한 감정 묻어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4일 공개된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를 박물관 직원이 펼쳐 보였다. 서애 류성룡이 1600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副將)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아!”

서애 류성룡(1542∼1607)이 1600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다이어리’ 격인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가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선 전해지지 않았던 사료인 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순간을 묘사한 기록까지 있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화재청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영의정까지 올랐던 문신 류성룡의 소장품으로 보이는 경자년(1600년) 대통력을 9월 일본에서 환수했다”며 유물을 처음 공개했다. 대통력이란 날짜와 절기 등에 따라 일정이나 감상을 정리한 책으로 오늘날로 치면 다이어리와 비슷하다.

경자년 대통력은 가로 20cm, 세로 38cm로 A4용지보다 조금 큰 크기다. 류성룡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203일에 걸쳐 실려 있다. 일월과 절기는 활자로 인쇄됐으며, 그 옆에 여러 내용이 먹물로 쓴 묵서(墨書)와 붉은색으로 쓴 주서(朱書)로 기입돼 있다. 그날의 날씨나 개인적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술 제조법 등이 적혀 있다.

충무공에 대한 기록은 서애의 징비록(懲毖錄)과 유사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문화재청의 정제규 전문위원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룬 징비록은 객관적 서술이 주를 이루지만, 경자년 대통력은 서애의 다양한 감정이 묻어난다”며 “충무공이 서애의 관직 파면 소식을 듣고 애석해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5월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의 제보를 받고 환수 작업에 착수했다. 노승석 여해연구소장은 해당 유물의 필적과 정보를 유성룡 문집 서애집에 실린 서애서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비교 검증해 그의 수택본(手澤本·직접 소장해 손때가 묻은 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 위원은 “경자년 대통력은 국내에는 현존하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서애 종손이 소장하고 있는 대통력 6책이 보물로 지정돼 있는데, 이번에 환수한 대통력 역시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