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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수출-투자 부진” 저성장 공식화… “내년 금리 3.5% 적절”

입력 | 2022-11-25 03:00:00

‘경제성장 마지노선’ 2%도 못넘겨
한은, 6회 연속 기준금리 올렸지만
경기침체 우려 0.25%P 인상 그쳐
가계-기업 경제 한파 고통 커질듯




내년 한국 경제에 더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 굳어지고 있다. 국책 및 민간 연구기관들이 줄줄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끌어내린 데 이어 한국은행마저 1.7%라는 암울한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오일쇼크 등 경제 시스템에 초대형 충격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2%라는 ‘성장 마지노선’을 항상 지켜왔다. 내년 경제가 2%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각종 대내외 악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사상 첫 여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한은은 내년 초까지 금리를 지금보다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금리의 장기화로 앞으로 경기가 더 냉각되고 가계와 기업의 고통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 내년 1%대 저성장 공식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11.24.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은 총재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내년 성장률은 수출과 투자가 예상보다 부진하고 소비 회복세도 완만해지면서 기존 전망치를 상당 폭 하회할 것”이라며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이유를 밝혔다.

한은은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경기 둔화 역시 성장률 하향 조정의 주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성장률 하향 요인의 거의 90%는 주요국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수출이 떨어진 효과”라며 “전 세계가 다 어려울 때 우리만 별도로 높은 성장률과 낮은 물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내년 미국은 0.3%, 유럽은 ―0.2%로 사실상 ‘제로 성장’이 예상되고 있고 글로벌 성장 엔진인 중국마저 성장률이 4.3%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대 성장 전망은 다른 주요 기관들 사이에서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성장률을 1.8%로 예상했고,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와 한국금융연구원은 각각 1.9%, 1.7%를 제시했다. 심지어 네덜란드계 금융사인 ING은행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 대란으로 고물가가 장기화되는 것도 부담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전기·가스 요금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글로벌 공급망도 크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물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성장은 둔화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속도 조절 나섰지만… 한두 번 더 올릴 듯
이날 한은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포기하고 보폭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 줄이며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도 이런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금리를 지나치게 높일 경우 비록 물가를 잡을 수는 있지만 소비와 투자 등 경제활동을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의 금리 인상 행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금융통화위원 다수는 내년도 최종 금리는 3.5%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초에 금리가 3.7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금리가 정점에 다다르더라도 한은이 바로 금리를 다시 내리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2%대)에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해진 뒤 금리 인하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지금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은 이어진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겨울 에너지 대란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시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 있다”며 “미국은 4.75%까지 금리를 올리고 한국도 3.50∼3.75% 선까지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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