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다세대주택 출입문에 전기요금 미납 고지서가 붙어있다. 이틀 전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이 집의 냉장고에서는 빈 반찬통과 케첩, 고추냉이, 약간의 쌀 등만 발견됐다. 모녀는 전기·가스요금과 건강보험료를 여러 달 체납했으며 8000만 원 가까운 카드 빚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승우 기자 suwoog2@donga.com
25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23일 오후 11시 22분경 서울 서대문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어머니 채모 씨(65)와 딸 김모 씨(36)가 숨진 채 집 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은 모녀의 집 앞엔 각종 공과금 미납 고지서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고지서에는 모녀는 올 5~10월 전기요금 총 9만2430원을, 6~10월 도시가스요금 3만 4550원이 체납했다고 나와 있었다. 현관 신발장 위에는 “월세가 밀렸다”는 집주인의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모녀의 냉장고 안에는 덩그러니 남은 빈 반찬통과 함께 케첩과 두어줌 가량의 쌀만 발견됐다.
모녀는 주변인들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녀가 살던 건물에 입주했던 A 씨는 “엄마와 따님 두 분이 조용하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만 했다. 집주인은 “1년 전 이사온 뒤 (나와는) 개인적 교류는 없었다”고 했다.
본보 취재 결과 모녀는 거주지인 서대문구와 주민등록상 주거지인 광진구 모두에서 별다른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지만 건강보험료와 통신비 체납, 금융연체 등으로 위기정보가 포착돼 위기가구 발굴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광진구의 복지담당자는 모녀가 실거주하지 않자 발길을 돌렸고, 서대문구는 모녀의 집 주소지에 전기료가 잇달아 연체됐음에도 위기가구가 살고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다.전기요금 3개월 이상 체납은 34종 위기정보의 하나인 ‘전기요금 체납’에 해당돼 한국전력공사가 보건복지부로 체납자 이름과 주소를 알린다. 하지만 이 모녀는 서대문구로 이사한 뒤 전기요금 명의변경을 하지 않아 과거 세입자 명의로 요금을 내고 있었다. 한전은 과거 세입자가 요금을 체납했다고 보고 보건복지부에 통보했고, 이에 따라 엉뚱한 이전 세입자가 정부의 복지 발굴 시스템에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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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청은 해당 주소지를 서류상 ‘무(無) 거주지역’으로 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기요금 미납으로 서울 서대문구의 모녀의 집을 방문한 것은 한국전력공사 측 요급수납 직원뿐이었지만 이 직원도 모녀를 만나지 못했다.
모녀가 부채와 생활고의 늪에 빠지게 된 경위는 아직 확실치 않다. 숨진 모친은 경기 지역에서 1982~2006년 교사로 근무했고,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녀는 최근 3년 간 거주지를 4번 옮겨 다녔다. 광진구 관계자는 “숨진 모친의 남편을 수소문해 연락해봤으나 ‘연이 끊겼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