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피터 스콧모건 지음·김명주 옮김/452쪽·2만2000원·김영사
2017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영국 로봇공학자인 피터 스콧모건 박사가 기계의 도움을 받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으로 공을 옮기고 있다. 영국 채널4 방송화면 캡처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신체장애는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2017년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진단을 받은 영국 로봇공학자 피터 스콧모건(1958∼2022)은 이를 시험하기 위해 직접 사이보그가 되기로 결심한다. 굳어가는 신체에 서서히 갇혀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시험대에 올렸다.
통계적으로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환자는 2명 가운데 1명이 2년 내에 숨진다고 한다. 하지만 꼭 정해진 대로 되진 않는다는 걸, 의학에 기술을 접목하면 시한부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저자는 증명하려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몸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우주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주를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은 ‘룰(규칙)’을 깨는 것이다.”
열여섯 살에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그는 어릴 때부터 기존 세상과의 반란을 꿈꿨다. 이러한 인식은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가정과 학교가 성적(性的)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며 더욱 깊어졌다. 그는 친구 앤서니에게 기존의 룰을 깨고 우주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앞으로는 불공평한 현실을 참지 않기로 했어. 그것을 바꿀 거야. 얻어맞고 복종하는 것도, 선택지를 빼앗기고 다수에 맞춰 사는 것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른 루게릭병의 룰을 깨는 건 너무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의학계는 몸이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기 전 공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그의 접근 방식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멀쩡한 장기(위, 결장, 방광)에 관을 삽입하고, 목 쪽에 있는 후두(喉頭)를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기 전에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먹고 배설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게 됐다. 다만 후두 적출로 침이 기도로 넘어가 질식할 위험이 사라졌지만 목소리도 함께 잃었다. 이에 실제 목소리와 유사한 합성 음성도 구현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요청한다.
박사가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기 전 모습과 사이보그 ‘피터2.0’ 아바타로 변신한 모습. 피터 스콧모건 제공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