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결혼 때마다 꼬박꼬박 내왔다면 본인이 ‘비혼(非婚)주의’를 선언하고 요구할 경우 당연히 줘야 한다.” “축하하려고 낸 거지 순번 정해 타려고 곗돈 부은 건 아니잖나. 돈 아까워 회수하겠다는 심보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논쟁거리로 등장하는 비혼 축의금 논란의 찬반양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중장년 세대에겐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 솔로 청년들은 정색하는 문제다.
▷작년 1월 PD 겸 방송인 재재가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비혼식(式)’ 경험을 공개했다. 친구들을 모아 비혼을 선언하고 축의금도 받았다고 했다. 올해 4월에는 한 인터넷 동호회에 ‘비혼이니까 축의금 안 내겠다는 친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하나가 첫 번째로 결혼하는데 다른 친구가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니까 축의금을 내지 않겠다. 결혼식 참석은 하되 밥도 안 먹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번거롭게 비혼 선언하고 축의금을 돌려받느니 아예 처음부터 안 내겠다는 거다.
▷결혼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결혼 안 한 여성은 22%, 결혼 안 한 남성은 37%뿐이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는 남성의 35%, 여성의 22%가 ‘결혼 자금 부족’을 들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을 피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주변 사람들의 결혼에 부담스러운 축의금을 내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롯데백화점도 올여름 만 40세 이상 결혼 안 한 직원에게 경조금과 휴가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결혼식 화환 대신 반려식물을 보내주기로 했다. 매년 ‘비혼 선언의 날’을 정해 신청한 직원들에게 유급휴가와 축의금을 주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 한국지사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기업들까지 독신자를 ‘아직 결혼 못한’ 미혼(未婚)이 아니라 ‘결혼 안 하기를 선택한’ 비혼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제 비혼 축의금에 거부감을 드러냈다간 ‘꼰대’란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