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교수가 10월 열린 춘천마라톤에서 질주하고 있다. 문송천 교수 제공.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70)는 3년 전 마라톤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러져 있던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영국에서도 락다운(lockdown)을 많이 해서 운동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달렸다”고 했다. 락다운은 군사계엄령 내린 것과 같이 어떤 활동도 금지되는 상황이다. 그는 올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50분대에 완주했다. 당분간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계속 하겠다고 했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아직 무릎과 발목에 전혀 문제없어요. 하지만 모든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아직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늘 걷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론 80세까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손천 교수가 가방을 들고 힘차게 걷고 있다. 문 교수는 20여년 전부터 자가용 차까지 버리고 속칭 ‘BMW 버스 메트로 워킹) 족’으로 매일 걷으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문 교수가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말 불거진 ‘Y2K(컴퓨터2000년 문제)’ 문제 해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Y2K국제대회 한국대표로 활약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Y2K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브라질을 2박 3일 만에 다녀오는 등 전 세계 1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잘못하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쯤 엘리트 위주의 마라톤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마라톤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이 있다”고 했다.
“이 기적은 출발한 뒤 30km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스스로도 도저히 완주하지 못할 것 같던 게 3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가능으로 역전되는 것을 느낍니다.”
문 교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이 ‘큰 일’을 자기 몸에서 나오는 능력만으로 해낸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문송천 교수(오른쪽)가 아내 이혜경 교수와 한 마라톤에 참가해 포즈를 취했다. 문송천 교수 제공.
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 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돕기 등 이웃돕기에 썼다.
“제 아내(이혜경 용인예술과학대 컴퓨터과 교수)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4)이 후원자입니다. 두 사람 다 1m 10원 운동에 적극 동참해줬습니다. 아내는 직접 뛴 적은 많지 않지만 제가 완주하면 매번 골인 지점에서 절 기다렸어요. 오닐 씨는 2009년 그의 첫 풀코스 레이스를 제가 이끌어 주면서 같이 뛰게 됐죠.”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인생 역정을 알게 된 뒤부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6·25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오닐 씨의 어머니는 어릴 때 고열로 인해 지적장애인이 됐고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어머니는 장애인 마라토너로 활약했다. 그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오닐 씨도 풀코스를 보통 3시간30분 이내에 뛴다”고 했다. 문 교수는 아내와 풀코스와 하프코스 동반완주를 7회 했다.
문송천 교수(뒷줄 가운데)가 KAIST축구팀 지도교수 때 모습. 문송천 교수 제공.
문 교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했다.
“제가 문과에서 이과로 옮겨 대학에 들어갔어요. 수학이 달렸죠.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다 쓰러졌어요.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죠. 그 때부터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회복 된 뒤로 축구공을 늘 매고 다니며 공을 차며 몸을 다졌어요.”
문송천 교수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서울캠퍼스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 발리를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번 맞지 않았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제가 운동을 한 뒤 뒤늦게 체력이 좋다는 것을 알고 운동을 생활화 했습니다. 한 끼는 굶어도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움직여야 합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살아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펙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
문송천 교수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서울캠퍼스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 드라이브샷을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