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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 급부상한 론 디샌티스

입력 | 2022-11-27 10:17:00

이탈리아계 젊은 플로리다주 재선 주지사… 히스패닉 포용 강점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가 재선을 위해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Miami Herald]

미국 플로리다주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혈투를 벌이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 주)다.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선거 때마다 지지 후보가 바뀌다 보니 해당 지역 유권자들 표심이 어디로 갈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플로리다주에서는 2000년과 2004년 대선 당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했다. 2008년과 2012년에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이겼다. 2016년과 2020년에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다. 플로리다주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에 이어 인구가 세 번째로 많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수도 세 번째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대선 후보는 플로리다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대선 승리에 유리하다. 물론 플로리다주 출신 대선 후보가 나올 경우 주민들 지지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플로리다주를 공화당 우세 주로 정치 지형 바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15일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CNBC]



이탈리아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11월 8일(현지 시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공화당 차기(2024)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59.4% 득표율을 기록해 40%에 그친 민주당 후보 찰리 크리스트 전 주지사에 압승했다. 19.4%p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1982년 이후 최대 격차일 뿐 아니라, 공화당 후보로서도 1868년 이후 최대 차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이번 승리로 플로리다주 정치 지형을 경합 주에서 공화당 우세 주로 바꿨다. 특히 디샌티스 주지사는 공화당 후보로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서 승리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는 그동안 민주당 전통 텃밭이었다. 미국 언론들도 디샌티스 주지사가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서 55% 득표율을 기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히스패닉 유권자가 과반을 차지하는 이 지역에서 승리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플로리다주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디샌티스 주지사에 대한 인종별 지지율을 보면 백인 65%, 히스패닉 58%, 흑인 13% 등이다.

히스패닉(Hispanic)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을 말한다. 중남미(라틴아메리카)에서 이주해왔다는 의미로 ‘라티노(Latino)’라고도 부른다. 히스패닉은 백인과 흑인이 뒤섞여 있으며, 대부분 가톨릭을 믿는다. 히스패닉은 현재 미국의 소수계 인종 중 최대 그룹이다. 미국 통계청이 10년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인구센서스를 보면 백인은 갈수록 줄고 히스패닉은 늘고 있다. 2020년 말 기준 미국 인구 3억 3144만 명 가운데 백인은 1억9170만 명으로 전체의 57.8%를 차지한다. 백인 비중이 6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2010년에는 63.7%였다. 반면 히스패닉은 6210만 명으로 전체의 18.7%를 차지하면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0년 전에는 16.3%였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나 공화당은 히스패닉의 지지를 받는 것이 각종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평가한다. 공화당은 디샌티스 주지사가 플로리다주에서 압승한 것은 향후 대선에서 승부를 가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만한 능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본다.

디샌티스는 1978년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디샌티스는 해군 법무장교로 복무하던 2007년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고,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테러 용의자 수용소’에서 근무했다.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검사 생활을 거쳐 2012년 하원의원에 당선했다. 2018년 플로리다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40세에 최연소 주지사에 당선해 한때 ‘리틀 트럼프’로 불렸지만, 트럼프보다 덜 선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사법 리스크’ 트럼프는 ‘지는 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저택을 압수수색해 발견한 기밀문서들. [미국 법무부]



특히 디샌티스 주지사의 급부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 15일 측근들의 대권 도전 연기 조언에도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 선언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해 지난해 1월 20일 4년 임기를 마치고 쓸쓸히 퇴장한 지 1년 10개월 만이다. 이번 대권 도전은 2016년, 2020년에 이어 세 번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선거위원회(FEC)에 2024년 대선 출마를 위한 서류를 제출했고, 이에 따라 2024년 대선에 공식 출마한 첫 번째 후보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출마의 변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 대권에 도전한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경우가 단 한 차례 있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전 대통령은 1885년부터 1889년까지 22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뒤 재선에 실패했지만 다시 24대 대선에 출마해 당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권에 도전해 당선한다면 두 번째가 된다.

그렇지만 공화당 일각에서 트럼프의 차기 대권 도전에 상당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중간선거 결과가 나빴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 언론은 공화당의 상하원 석권을 의미하는 이른바 ‘레드 웨이브’(red wave: 빨간 물결)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특히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 다수가 낙선하면서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 책임론’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하원에서 민주당에 가까스로 이겼고, 상원에서는 민주당에 다수당 지위를 내줬다. 중간선거는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인 데다, 미국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등 경제위기에 놓였음에도 공화당이 사실상 패배한 것은 트럼프의 지나친 선거 개입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연방 상하원 및 주지사 등 주요 공직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 300여 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30차례 선거 지원 유세를 벌이는 등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선거에서 고전했고 일부는 낙선했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도 공화당 내에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미국 법무부는 트럼프의 기밀문서 유출 관련 혐의와 1·6 연방의사당 폭동 사태 선동 의혹을 조사하고자 잭 스미스 전 검사를 특별 검사로 임명했다. 트럼프는 퇴임하면서 기밀문서들을 불법적으로 대거 반출한 혐의와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해 벌인 1·6 연방의사당 폭동 사태를 선동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게 된다. 또한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일가가 각종 자산 가치를 조작해 금융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조지아주 검찰은 트럼프가 조지아주 국무장관 등에게 자신이 패배한 대선 결과를 뒤집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각각 수사하고 있다.


공화당 거물들과 언론, 론 디샌티스 지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가족. [FLOGOV]



트럼프를 지지해온 공화당 거물들과 언론은 벌써부터 말을 바꿔 타고 있다.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기부한 케네스 그리핀 헤지펀드 시타델 최고경영자(CEO)는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후보를 찾아야 할 때”라면서 디샌티스 주지사에 500만 달러(약 68억 원)를 기부했다.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공화당원들은 디샌티스 주지사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우군이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도 디샌티스 주지사를 지지했다. 심지어 머독 소유의 ‘뉴욕포스트’는 트럼프의 대권 재도전 기사를 1면이 아닌 26면에, 그것도 트럼프라는 이름이 아닌 ‘플로리다 은퇴자’라고 짤막하게 다뤘다. 대표 보수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사설에서 “민주당은 트럼프의 출마를 내심 반기고 있다”며 “트럼프가 민주당의 ‘비밀 병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야후뉴스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고브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공화당원과 친공화당 성향 무당층 유권자의 42%가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디샌티스를 선호했다. 트럼프는 35%에 그쳤다. 심지어 공화당 텃밭이자 핵심인 텍사스주에서 공화당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디샌티스는 43%, 트럼프는 32%를 기록했다.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들은 백인을 주요 지지층으로 하는 트럼프보다 히스패닉까지 포용할 수 있는 디샌티스가 대선에 훨씬 유리하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히스패닉의 지지를 받아온 민주당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44세인 디샌티스는 11월 20일 80세 생일을 맞은 민주당의 차기 대선 유력 후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1970년생)보다도 젊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세대교체를 통해 디샌티스에 맞설 대선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6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