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콘서트 포문을 연 조용필이 두 번째 곡 ‘단발머리’를 부르고 있다. 분홍색과 연보라색 구름이 떠다니는, 동화 속 세계와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72살에 ‘오빠’라는 호칭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이가 또 있을까.
26일 오후 7시 10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콘서트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 무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연상케 하는 검정색 점박이 셔츠에 흰 바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조용필(72)은 여전한 ‘오빠’였다.
‘오빠!!’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여성팬, ‘형님!!’이 적힌 플래카드를 든 남성팬 1만 명은 2018년 50주년 기념 콘서트 이후 4년 만에 무대에 오른 ‘가왕’을 격하게 반겼다. “3kg이 불어서 주름살이 좀 없어진 것 같아”라는 그의 말처럼 조용필의 얼굴은 회춘한 듯 젊었다. 목소리의 힘도 그대로였다. ‘꿈’에서 시작해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모나리자’, 신곡 ‘세렝게티처럼’, ‘찰나’ 등 23곡을 열창한 2시간 10분 동안 초원을 가르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투명하고 청량했다.
조용필 콘서트 현장에 내걸린 플래카드. ‘오빠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찰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결정적인 찰나’는 그가 18일 발매한 신곡 ‘찰나’의 가사 중 일부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6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가수 조용필의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만 명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가왕’은 26일과 27일, 다음달 3, 4일까지 나흘 간 4만 명의 관객을 만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가왕은 오랜만의 무대에 감격한 듯 했다. 두 번째 곡 단발머리를 부를 때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드는 객석을 응시하던 그가 ‘와’ 하며 감탄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포착되기도 했다. 꿈과 단발머리, ‘그대를 사랑해’ 세 곡을 연이어 부른 뒤 “얼마만이에요? 제가 아마 가수 생활 한 뒤로 가장 긴 시간이 아니었던가 생각이 듭니다. 4년이 40년 같았습니다. 그립기도 했고 반갑고 기쁩니다. 아주 좋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노래 맘껏 부르시고, 소리를 낼 때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가 올려. 어쩔 수 없잖아요, 그죠?”라며 농담을 건네자 객석에서 ‘사랑해요’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조용필은 “나도요”라며 화답했다.
팬덤 문화의 시초, ‘오빠부대’의 창시자답게 ‘위대한 탄생’ ‘미지의 세계’ 등 팬클럽의 화력은 뜨거웠다. 오후 7시 정각 밴드 멤버가 등장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빠!’하는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 망원경을 챙겨 온 이부터 조용필 이름 석자가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흔드는 팬, ‘조용필’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팬들까지 다양했다. 공연 도중 “몰입하다보면 콧물이 나요. 휴지 좀 갖다 주세요”라고 말한 조용필이 스태프로부터 수건을 건네받아 코를 닦자 한 팬은 “던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필은 “던지라고?”라며 웃었다. 앞줄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을 즐겼고, 통로로 나와 플래카드를 흔들며 뛰는 팬들도 있었다.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조용필. 그는 이날 그의 곡 제목인 ‘세링게팅의 표범’을 연상케 하는 검정색 점박이 무늬의 셔츠를 입고 무대에 섰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휘몰아치는 히트곡의 향연에 매 순간이 클라이막스였다. KBS ‘가요톱10’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전설적인 곡 ‘못찾겠다 꾀꼬리’와, KBS 라디오 24주 연속 1위를 지켰던 ‘고추 잠자리’는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조용필이 함께 불렀다. “차분하게 옛날 분위기로 갑시다”라는 멘트와 함께 이어진 ‘친구여’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사가 가슴에 사무치는 ‘그 겨울의 찻집’의 무대에선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 곡 ‘여행을 떠나요’에선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조용필의 9년 만의 신곡 ‘세렝게티처럼’ 무대. 해질녘 아프리카의 초원을 연상케 하는 화면이 펼쳐졌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번 공연에서 조용필은 신곡 ‘세렝게티처럼’과 ‘찰나’의 무대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2013년 정규 19집 ‘헬로’를 발매한 후 9년 만의 신곡인 만큼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헬로의 수록곡 ‘바운스’로 싸이의 ‘젠틀맨’을 밀어내고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던 가왕의 신곡은 또 한 번의 음악적 도전이었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인 세렝게티처럼 후렴구 ‘여기 펼쳐진 세렝게티처럼 꿈을 던지고 그곳을 향해서 뛰어가 보는 거야’의 고음 구간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앵콜무대의 첫 곡이었던 찰나에선 ‘반짝이는 너, 흐트러진 나, 환상적인 흐름이야’를 전자음으로 내뱉었다. 세렝게티처럼 무대 후 조용필은 “항상 녹음할 때는 열심히 합니다. 그러고 나서 궁금하죠.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저 그럴까?’ (곡을) 발표하고 나서는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도 신곡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추억속의 재회’ 무대에서는 조용필이 해저에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수면 아래에 선 듯한 그의 주변으로 물방울들이 보인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추억속의 재회’ 무대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장면이 스크린에 연출되자 객석에서는 엄청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방송을 통해 나오는 음악엔 한계가 있고 감동도 없어 나와는 맞지 않는다”며 무대 음악이 주는 전율을 강조해온 그답게 무대연출은 압도적이었다. 정면과 좌우, 위까지 네 개의 대형 스크린에 더해 상단 좌우의 작은 스크린까지 총 여섯 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이 활용됐다. 화면에 펼쳐지는 장면들은 매순간이 장관이었다. ‘추억속의 재회’를 부를 땐 중앙과 좌우 스크린 상단에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을 연출해 마치 조용필이 심해에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6개 스크린 전체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장면과 함께 객석에선 탄성이 나왔다. ‘친구여’에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세렝게티처럼‘에선 해질녘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이, ‘단발머리‘에선 분홍 솜사탕구름이 가득한 동화 속 세계가 펼쳐졌다.
조용필은 내년 ‘세렝게티처럼’과 ‘찰나’가 수록된 정규 20집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예정대로 내년에 앨범이 나온다면 정규 19집 이후 10년 만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번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가왕의 음악적 혁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1980년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정규 1집 ‘창밖의 여자’로 한국 대중음악사를 다시 쓴 그는 33년 뒤인 2013년, 예순 셋의 나이에 음원차트와 음악방송 차트를 석권한 곡 ‘바운스’로 살아있는 전설임을 입증했다. 2023년, 일흔 셋의 가왕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조용필은 26일과 27일, 다음달 3, 4일 나흘 간 KSPO돔에서 4만 명의 관객을 만난다.
내년 정규 20집 발매를 계획하고 있는 ‘가왕’ 조용필.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