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 앞 메이시스 백화점. 할인 쇼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메이시스 백화점.
25일부터 시작된 미 최대 쇼핑 성수기 ‘블랙 프라이데이’ 둘째날인 이날 백화점 입구에서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예년과 달리 해외 관광객도 대폭 늘었다. 특히 겨울 이불, 가정용품 등 필수품 매장은 세일 폭이 큰 일부 물건이 품절됐을 정도로 붐볐다.
하지만 3층부터 입점한 여성복 및 남성복 매장은 예년과 달리 한산했다. 한 여성복 매장 직원은 “50% 세일에 추가 25% 할인을 하고 있는데도 예상보다 조용한 편이다. 그나마 해외 관광객이 돌아온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 “주차장에 자리가 남는다”
이날 커피 캡슐을 사러왔다는 할리마 씨(38)는 “평소에 사던 물건인데 75달러 이상 사면 추가로 두 박스를 더 주는 행사를 한다. 원래 쓰던 물건이라 그것만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20% 세일 중이던 장난감 ‘레고’ 코너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사러 왔다. 블랙 프라이데이에만 할인하는 물건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날 금요일부터 시작해 주말동안 계속되는 할인행사를 일컫는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 미국의 영향으로 전 세계 온·오프라인 쇼핑몰이 동시에 할인 행사를 벌인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한 해 최대 쇼핑 성수기의 시작이라 미 소비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꼽힌다.
올해 미 블랙 프라이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된 이후 첫 명절어서 작년에 거의 사라졌던 ‘새벽 줄서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로이터,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은 “인플레이션에 타격을 입은 소비자들이 예년처럼 충동구매를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저지주에 사는 에이미 황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예전엔 일단 가서 보고 샀지만 올해에는 예산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26일(현지시간) 뉴욕 매이시스 백화점 여성복 매장.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관광지인 뉴욕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외곽 쇼핑몰은 평소와 비슷할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시장조사기관 NPD그룹의 수석산업고문인 마셜 코언은 로이터에 “보통은 매년 이때쯤 주차할 자리를 찾기가 힘든데 올해는 전혀 주차 문제를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대도시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 백화점도 비교적 사람이 적었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빅테크 감원에 영향을 받은 곳 중 하나다.
● “렌트비 내면 남는 돈이 어딨나” 호소
점점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는 점도 다소 썰렁한 블랙 프라이데이의 원인으로 꼽힌다. 온라인 쇼핑 추이를 분석하는 어도비의 ‘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 당일 온라인 쇼핑 매출은 전년 대비 2.3% 늘어난 약 91억2000만 달러(12조2000억 원)로 집계됐다. 90억 달러가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약 8% 수준임을 감안하면 실질 매출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미국 소셜미디어에선 고물가에 불만을 토로하는 누리꾼들이 많았다. 한 사용자는 “식료품이나 휘발유 ‘핫 딜’이면 모를까 렌트를 빼면 남는 돈이 없다”고 토로했고, 또 다른 사용자는 “매일 온라인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것을 넣어놓고 가격을 체크한다. 이제는 e북 조차 작년대비 50% 이상 올랐는데 할인 조금 해준다고 고마워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40대 주부 클레어 씨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할인 폭이 더 커진다. 예산이 빠듯하니 더 싸질 때까지 버티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쇼핑백을 들고 가는 한 소비자.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