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체 만들어 내는 기술, 치료제 분야서 다양하게 활용 英, 코로나바이러스 파괴 효소 발명 질병 연관된 RNA만 정확하게 공격… 미국서는 난치성 암 치료제 개발 중 농업-식품 등 산업에도 적용 가능… 2030년까지 연평균 20% 성장 전망
최근 의학 분야에 합성생물학이 적용되며 질병 치료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제공
영국 과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인공 효소를 만들었다. 차세대 항바이러스 약물로 활용이 기대되는 이 효소는 생명과학에 공학 기술을 적용해 생명체의 구성 요소나 시스템을 설계, 제작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활용하는 합성생물학 기술로 개발됐다. 미국 화이자나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역시 인공적으로 합성한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기반으로 한 합성생물학의 성과다. 이처럼 최근 의학 분야에 합성생물학이 적용되며 질병 치료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 바이러스 찾아내 사멸하는 ‘인공 효소’
알렉산더 테일러 영국 케임브리지대 치료면역학 및 전염병연구소 연구원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죽일 수 없는 약한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다”며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16일 공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효소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인식해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RNA 분자를 절단한다. RNA 기본구조 단위는 ‘뉴클레오티드’다. 효소는 표적으로 삼은 RNA의 뉴클레오티드가 단 하나만 달라도 이를 인식할 만큼 정확도도 지녔다. 연구팀은 “암 등 다른 질병과 관련된 RNA를 공격하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정상적 RNA 분자는 그대로 둘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개발한 효소가 실제 세포 내부에서 효소로 작용하고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체내 면역체계 약화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항바이러스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의 다음 과제는 효소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 일종의 ‘방탄’ 능력을 확보해 체내에서 더욱 오래 머물고 더 적은 양으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합성생물학, 국가 전략기술로 주목
합성생물학은 유전자를 편집해 기존 생명체의 기능을 변경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생물 체계를 합성하는 기술을 포함한다. 2010년 이전에는 세포를 설계하거나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획기적인 기술의 등장으로 합성생물학이 주목받고 있다.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 분야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등이 대표적이다. DNA 합성기술의 가격이 지난 15년간 10분의 1로 떨어지는 등 비용 경쟁력도 높아졌다. 실제 실험실 수준에서 벗어나 임상을 진행 중인 약물도 대거 등장했다. 2003년 설립된 미국 합성생물학 기업 아미리스는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 기업 프레시젠은 합성생물학을 기반으로 난치성 암과 자가면역질환, 감염병을 표적으로 하는 유전자 및 세포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창업 스타트업인 진코어 역시 합성생물학 기반의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도전 중이다.
각국의 합성생물학 육성 의지도 강력하다. 9월 미국은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에 서명하며 핵심 전략 분야 중 하나로 합성생물학을 꼽았다. 유럽과 중국 역시 관련 기술 개발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을 합성생물학에 적용해 바이오산업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플랫폼인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미 영국에 5곳, 프랑스도 4곳이 있다. 중국도 내년부터 대규모 바이오파운드리 단지 운영에 들어간다.
지난달 한국 정부 역시 국가전략기술의 세부 중점기술 중 하나로 합성생물학을 꼽았다. 김종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연구위원은 “미국 바이오 행정명령에 대응해 바이오 생산과 제조, 공정 관련 기술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합성생물학 등 바이오 산업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