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달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실시한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RP 매입을 통한 유동성을 공급 지원에 나섰다.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는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돼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8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차 캐피탈콜 출자 금융기관에 대해 RP매입을 통해 최대 2조5000억원까지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달 6조원 RP 매입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또 다시 유동성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에는 채안펀드를 통해 부동산 프러젝트 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건설업 관련 비우량 회사채, A2등급의 기업어음(CP) 등에 대해서도 추가 매입하기로 했다. 사실상 한은이 유동성을 풀어 은행을 통해 PF-ABCP, 저신용 회사채 등에 대해서도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은은 이번 조치가 연말을 앞둔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우려 확산, 단기금융시장 경색 심화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금시장은 회사채 3년물 금리가 지난달 23일 대책 발표전인 10월 21일 5.73%에서 이번달 25일 5.3%로 하락하는 등 시장 불안이 점차 진정되고 있다.
또 PF-ABCP는 연말까지 20~30조원 가량이 만기 도래가 예정돼 있고, 유통금리가 최근 20%를 넘어서는 등 위축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채안펀드 출자기관에 대한 RP매입은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조치인 만큼 금리인상을 지속하고 있는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한은이 공개시장 운영으로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지난 2020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겪자 한은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하 응찰액 전액을 지원해 주는 무제한 RP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한 바 있다. 무제한 유동성 유동성 공급조치로 한국판 양적완화로 볼 수 있는 조치였다. 당시 고정금리 모집 입찰로 응찰금액 전액을 낙찰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RP매입은 시장 실세금리에 10bp(1bp=0.01%포인트)를 더한 금리를 적용해 차이는 있다.
한은이 RP를 매입하게 되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 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한은은 RP매입은 금융안정 차원의 시장안정화 조치로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다시 흡수하기 때문에 추가 유동성 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RP 매입을 통해 시장에 자금이 풀리면 금리가 하락하게 되고 추후 이를 적정금리로 맞추면서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등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다시 유동성을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단기금융시장 등에서의 자금조달 불안심리 확산과 경색 가능성에 대한 미시적 타켓 정책인데다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는 현 통화정책 스탠스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며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원활한 작동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 결정의 보완적 조치이며, 금융안정에도 유의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 필요한 정책 대책”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대책 발표 이후 다른 시장은 안정 됐는데 단기시장, CP시장은 안정 안 된 상황에서 연말 자금 사정을 고려해 사전적으로 대비하는 차원”이라며 “단기시장 안정이 한은 금리정책 파급이 시작하는 곳으로 통화정책 경로상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