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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와 청나라 학자들의 교류, 現 한중관계 시사하는 바 커”

입력 | 2022-11-29 03:00:00

서신 모음 ‘호저집’ 완역 정민 교수
“국가간 교류는 틀어질 수 있지만
문화 교류 통한 신뢰-존중은 영원”




“어쩌다 만나 한방에서 함께 잔치하며 초록빛 술과 붉은 등불 아래에서 예술을 말하고 붓을 휘둘렀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만 리 떨어져 있어도 한 하늘 아래이고 멀리 있지만 날마다 가까이 한다는 말로 한갓 위로를 삼을 뿐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편지는 청나라의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가 내년에 사신으로 갈 것 같다고 전한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에게 1792년 보낸 답장이다. 박제가가 청나라 지식인 172명과 나눈 필담, 시문, 서신을 모아놓은 ‘호저집(縞紵集)’이 우리말로 이달 처음 완역됐다.

2020년부터 3년간 제자들과 함께 호저집을 번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사진)를 2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박제가만큼 청나라 학계에서 명성 높은 학자들과 많이 그리고 깊게 오랫동안 교류한 사례는 없었다”며 “200년 전 두 나라 지식인들이 나눈 존모(尊慕)의 정을 보여주는 호저집은 현재 한중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조선 후기 한문학 4대가로 꼽혔던 박제가는 20대 후반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1778년부터 1801년까지 4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이를 통해 청나라 학계의 거목인 기윤, 옹방강 등 일급 지식인과 교유했다. 호저집 완역본 발간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실학박물관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했다.

중국은 2016년부터 한국 콘텐츠의 수입을 막는 한한령(限韓令)을 시행해 왔다. 그나마 15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한국 영화 서비스가 재개됐다. 정 교수는 “국가 간 교류는 상황에 따라 틀어질 수 있지만 문화 교류를 통한 신뢰와 존중은 영원히 남는다”면서 “지금처럼 한중 간 문화 교류가 차단된 현실에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인간적인 만남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