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은 그야말로 국가 간 미술문화 전쟁터다.”
크리스티 홍콩은 아시아 각국의 미술품 최대 격전지로 자웅을 겨룬다. 작품은 물론 컬렉터들의 머니게임의 각축장이다. 한화 약 2040억 규모의 올해 마지막 경매를 치루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여전히 뜨겁다. 28일부터 보석, 와인, 럭셔리, 고미술, 현대미술 등 총 5개 경매를 펼치고 있다. 20~21세기 미술 현대미술 이브닝 경매를 앞두고 열린 중국 고가구 등 고미술품 경매는 100% 낙찰됐다.
29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크리스티 코리아 이학준 대표는 “나와 있으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각국 미술품은 나라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낙찰가격이 곧 국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한,중,일 3국의 경쟁 속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미술품이 부상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작품값을 뛰어넘고 있다. 자국의 미술에 투자하는 컬렉터들과 미술력을 키우려는 마케팅의 힘이다.
최근 크리스티 뉴욕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앨런의 자선 경매가 증명한다. 금융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단일 경매로는 최고액인 15억638만6000달러(2조 640억원)의 낙찰총액을 달성했다. 최고가는 조르주 쇠라의 ‘모델들, 군상’으로 1억4900만달러(2041억원)에 팔렸다. 15.5인치, 폭 20인치의 작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경매장에서 만난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은 “실제로 아시아 고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아시아 고객이 글로벌 상반기 판매 총액의 39%, 연간 판매 총액의 31%를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는 구매액이 16억 8000만 미국달러(약 2조 원)를 차지한다. 2021년 홍콩 경매의 판매 총액은 10억 3000만 미국달러(한화 약 1.2조 원)에 달한다.
벨린 사장은 “전 세계 미술시장 역동성면에서 아시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크리스티 홍콩은 아시아 본사를 확장 이전한다. 2024년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에서 건축한 The Henderson으로 확장 이전, 아시아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중국 고미술품 중 고가가 9억 홍콩 달러에 팔려 상기된 모습을 보인 벨린 사장은 “현재 홍콩컨벤션 센터를 대여해 1년에 단 2번 경매하는 것과 달리 뉴욕 록펠러센터, 런던 킹스트릿처럼 1월부터 12월까지 계속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경매 뿐만 아니라 전시도 선보일 것”이라며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30일, 12월1일 2일간 경매가 크리스티 홍콩의 올해 마지막 실적을 올릴 하이라이트 경매다. 20~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21세기 미술데이 경매 등 총 270여 점을 선보인다.
중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산유의 매화 (Potted Prunus)가 한화 약 144억~169억, 조안 미첼의 ‘무제(Untitled)’가 한화 약 135억~203억 원에 아시아 경매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또 조지콘도의 인위적인 사실주의 시리즈 작품이 54억 4896만 원, 아드리안 게니의 ‘퇴폐 미술(귀에 붕대를 감은 빈센트 반 고흐로서의 자화상)’이 한화 약 81억~115억 등이 이번 경매 대표작으로 선보였다. 이브닝 경매에는 이성자의 ‘무제’가 한화 약 2억 2136만 원에 출품되어 눈길을 끌었다.
정윤아 크리스티 홍콩 스페셜리스트는 “지난 5월 열린 홍콩경매에서 방탄소년단 RM이 이성자의 ‘Subitement la loi(갑작스러운 규칙)’을 9억 원에 낙찰 받으면서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며 “이후 해외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고 있고 이번 출품작도 파리에서 좋은 가격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추상화가 고(故) 이성자(1918~2009)는 국내 미술계에서 김환기, 이우환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환기보다 더 먼저 파리에 유학한 화가로 당시 한국 화가로는 유일하게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중국 추상미술 개척자 자오 우키(1921~2013)와 교류하며 작업한 작가다.
이번 홍콩 경매에는 이브닝 경매에 이성자의 1점만 출품됐을 뿐 예년에 비해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다. 또한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김창열 등의 국내 블루칩 작가들 작품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작품을 도드라지게 초점을 맞춘 조명과 공간감과 개방감을 살린 가벽 설치로 그림 감상의 묘미를 더했다. 온라인 활성화속에서도 그림은 여전히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는 고객 만족 서비스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게 크리스티 홍콩의 경영 방침이다.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취지로 경매 수수료 26%가 그리 높지만은 않다는 배경이기도 하다.
[홍콩=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