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월북’으로 몰아 사실은폐 혐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사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 정부 들어 지난 정부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29일 서 전 실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24일부터 이틀 연속 서 전 실장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첫 조사 5일 만에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구속영장실질심사는 다음 달 2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검찰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피살된 다음 날(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경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과 함께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檢, 서훈 구속땐 박지원 조사뒤 마무리할듯
‘서해 피살’ 서훈 영장
徐, 혐의 부인… 내달 2일 영장 심사
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직무 수행 중이던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피살됐음에도 이를 숨기기 위해 첩보 삭제를 지시하는 등 사실을 은폐하려 한 혐의가 중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 전 실장이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다고도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4, 25일 서 전 실장을 상대로 조사할 때도 이대준 씨가 피살된 다음 날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 방침과 배치되는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날 오전 8시 반경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한 최초 대면보고 내용과 이때 문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 등에 대해서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서 전 실장은 “첩보 삭제를 지시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당시 군의 대북 감청정보(SI·특수정보) 첩보에 (이 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당시 정황에 근거한 월북 판단은 정당했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원은 감사를 통해 2020년 9월 23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안보실이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이후 국방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 국가정보원에서 첩보보고서 등 자료 46건이 무단 삭제됐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관계기관이 무리하게 월북 결론을 내렸다고 봤다.
앞서 검찰은 6월 말 이 씨 유족 측의 고발장을 접수한 뒤 지난달부터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 사건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당초 검찰은 서 전 장관과 김 전 청장을 구속 기소할 방침이었지만, 이들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을 법원이 인용하며 풀려나 아직 기소는 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을 불러 조사한 뒤 사건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설사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이미 확보한 증거와 진술 등을 토대로 기소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