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중국 전 국가주석.
장쩌민은 통치 기간 중 공산당 총서기(1989~2002년),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89~2004년), 국가주석(1993~2002년)으로 당·정·군을 장악했다. 공산당 파벌인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사)의 수장이었다.
그는 상하이 당 서기 시절인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때 학생들을 옹호했다가 축출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의 후임으로 하루아침에 중국 정치 중앙 무대에 등장했다. 덩샤오핑은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을 지지했던 장쩌민에게 그해 5월 총서기 자리를 제안했다. 장쩌민이 웃날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회고할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장쩌민은 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강화해 톈안먼 시위와 구 소련 몰락으로 위기를 맞았던 중국 내부 정치를 안정시키면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신(新)권위주의’ ‘개발독재’ 등으로 불렸다.
장쩌민 임기 동안 중국은 매년 평균 8%의 경제성장률을 지속하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을 계속했다. 국가가 100% 소유하고 있던 국영기업의 지분을 일부 민간과 외국인에게 매각하는 등 시장경제 요소가 증가하는 구조개혁이 진행됐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 2001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최권(2008년) 획득 등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장쩌민(왼쪽)과 빌 클린턴. 1997.10.29 AP=뉴시스
2002년 중국 공산당 헌장에 삽입된 장쩌민의 3개대표 사상은 개혁개방에 따라 주요 사회 세력으로 상정한 자본가와 지식을 포용해 공산당의 권력 기반을 자본가 계급으로 넓혀야 한다는 이론이다.
장쩌민은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진타오(胡錦濤) 시대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도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 주석이 장쩌민의 상하이방 세력이 막후 권력투쟁을 벌여 왔다. 시 주석이 부패 퇴치를 내세워 사실상 상하이방 대부분 세력을 숙청했다. 장쩌민은 지난달 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불참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