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반도 박사 신석호 부국장과 함께 대담을 나눴습니다. 신 부국장은 “북한은 영국도 한국도 아니다”라며 “딸 김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된 것이란 주장은 북한 체제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딸 후계자’ 나올까?
▷조아라 기자공개된 사진들을 살펴보면 김 위원장과 김주애는 시종일관 손을 꼭 잡은 모습인데요. 너무 다정한 부녀의 모습에 김주애를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북한 매체가 김주애를 김 위원장의 ‘존귀한 자제분’, ‘가장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하며 수령한테나 붙일 수 있는 수식어까지 갖다 붙이니 일부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흥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 딸인 김주애가 등장한 것만으로 후계자라고 하는 건 너무 빠릅니다. 현재 김 위원장은 만 12살, 만 5살의 아들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지금은 자녀들이 너무 어립니다. 김 위원장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이른 셈이죠.
지난달 27일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둘째 딸 김주애. 김 위원장은 이날 둘째 딸과 팔짱을 끼거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함을 과시했다. 뉴스1
또 하나의 의문점이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딸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겠냐는 겁니다.
▶신석호 부국장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나왔을 때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었어요. 하지만 북한이 영국인가요, 대한민국도 아니죠. 영국에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장기 집권했고 한국도 여성 대통령이 재임했었죠. 두 국가 모두 개방된 민주주의 국가예요. 북한은 아직 봉건주의, 가부장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퇴행적인 체제를 갖고 있어요. ‘어버이 수령을 따르라, 어머니는 당’이라는 선전 구호가 난무하는 북한에서 여성이 수령이 될 수 있을까요. 여성이 최고지도자인 논리는 북한에 없다는 거죠.
▷조아라 기자
중립기어 박겠습니다. 북한 매체가 김주애를 소개하면서 극존칭을 사용했잖아요. ‘존귀한 자제분’이라고 한 건 김주애가 김씨 일가, 백두혈통이라 높여 불렀다고 할 수 있지만 세 명의 자제 중 김주애를 ‘제일 사랑하는 자제’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정도면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김주애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 아닐까요?
▶신석호 부국장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 후계자는 사랑한다고 넘겨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북한의 독재 권력은 권력이 집중돼 있고 독재자는 좋은 일만 하는 게 아니죠. 오히려 딸을 제일 사랑해서 권력을 안 줄 수도 있는 거예요.
김일성 주석 때는 김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 인민군 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는 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그 역할을 맡았어요. 그 결과 최현 아들인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이인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세습하면서 측근들도 권력을 세습하는 거죠. 이것이 세습 독재국가의 민낯이에요.
▷조아라 기자
김주애는 지금까지 화성 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현장과 미사일 부문 과학자와 노동자를 격려하는 자리에서 2번 공개됐습니다. 특히 다시 등장했을 때는 처음과 다르게 리설주와 똑 닮은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이 현장에 리설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딸 김주애가 리설주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까요?
지난달 18일과 27일 공개된 김주애의 모습. 유튜브 ‘중립기어’ 캡처
▶신석호 부국장
그런 거죠.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김 주석을 따라 살을 찌웠잖아요. 김주애는 어머니 리설주를 따라 하고 있는 게 맞아요. 그런데 리설주와 김주애의 차이는 뭘까요. 성이 다르잖아요. 리설주는 후사를 책임진 부인이지만 백두혈통은 아닌 거죠. 리설주가 2012년 공개됐었죠.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리설주의 역할이 김주애에게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조급증 드러낸 ‘조기 교육’?
▷조아라 기자김 위원장은 왜 이렇게 자녀를 빨리 공개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걸까요?
▶신석호 부국장
저는 김 위원장이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김 위원장이 자신의 자제들이 권력을 물려받지 못할 경우 대안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에요. 이복형인 김정남의 맏아들인 김한솔이 살아 있잖아요. 김한솔은 현재 김정남이 2017년 피살당한 후 자유조선이란 단체의 도움을 받고 피신한 상태인데요. 이 씨 조선의 봉건적인 법도에 따른다면 지금 등장해야 될 건 김주애가 아니라 장손인 김한솔인 거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가계도. 동아일보 DB
▷조아라 기자
여기서 중립기어 한 번 박겠습니다. 김한솔의 아버지인 김정남은 어머니 성혜림이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아니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그런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신석호 부국장
지금 많은 탈북자들이 북한 밖에서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거든요. 이 사람들은 만약 북한에 큰 변화가 있어서 권력을 갖게 된다면 김한솔을 지도자로 내세울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거든요. 물론 김 위원장이 장악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가 지속된다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김 위원장 입장에선 체제를 단속하고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가 될 수 있죠. 김한솔이 후계자로 추대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자신의 자제들이 잘 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들을 보여주긴 어려우니, 딸을 데리고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아라 기자
마지막으로 중립기어 박겠습니다. 김 위원장이 현재 조급할 수 있다는 추측을 하셨는데요. 저는 오히려 김 위원장의 자신감이 넘쳐나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수령과 인민은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잖아요. 대륙간 탄도 미사일 화성 17형까지 완성한 상황에서 딸까지 활용해 자신이 어버이 수령 반열에 올랐다는 걸 강조하는 모습으로 보였거든요.
▶신석호 부국장
그건 저도 동의할 수밖에 없어요. 국가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좋은 어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나쁘지 않은 거죠. 정치적으로 이러한 장면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 위원장 자신의 3대 세습 권력을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딸을 등장시키고 있는 거죠.
●시동 거는 ‘백두혈통’ 4대 세습
▶신석호 부국장저는 김주애가 북한이 전술핵 타격 능력을 완비한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에도 주목했는데요. 지금까지 북한은 적대적 세력에 맞서기 위해 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했죠. 하지만 사실은 핵미사일이 김씨 일가, 백두혈통의 안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게 드러난 거라고 봤어요.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을 살펴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둘째 딸 김주애. 뉴스1
▷조아라 기자
국정원에서는 김주애의 등장에 대해 “미래세대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했습니다.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양새에요.
▶신석호 부국장
독재에도 좋은 독재가 있고 나쁜 독재가 있다고들 해요. 독재를 하더라도 국민들이 살기 좋아지는 방향으로 독재하면 좋은 독재라는 거죠. 물론 논란은 있지만 한국 박정희, 싱가포르 리콴유 정권의 독재를 좋은 독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북한 독재를 좋은 독재라 말할 수 있을까요. 3대 세습 독재로 북한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김 위원장이 ICBM 앞에서 딸과 함께 등장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신석호 부국장은 앞으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가 될지 관측하기 위해선 ‘이 공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 유튜브에서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조아라 기자 like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