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리서 만난 민간 유치위원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 모처에서 진행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최 회장은 점차 악화하고 있는 글로벌 경영 환경과 관련해서는 ‘딸꾹질 상태’라는 표현을 가져와 기업인으로서의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파리=곽도영 기자 now@donga.com
《 재계 2위 SK그룹의 선장이자 국내 유일 법정 경제단체의 수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 두 직함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그런 최 회장에게 올해 또 하나의 감투가 생겼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위원회 민간위원장이 그것이다. 내년 11월 결정될 엑스포 유치 활동을 위해 최 회장은 해외 출장이 더 잦아졌다.
그를 만난 것도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제171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총회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4개국의 엑스포 유치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이 진행됐다. 한국은 PT에서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K컬처’를 모티브로 활용해 기후변화와 경제 불평등 같은 인류 과제를 스토리 형식으로 제시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지난달 25∼29일 일정으로 파리를 찾은 최 회장은 BIE 총회 기간에 정부 및 민간위원들과 협력해 PT를 지원하는 한편 각국 대사들과의 비공식 미팅도 숨 가쁘게 이어갔다. 본보와의 인터뷰는 PT가 끝나고 난 뒤 파리 모처에서 진행됐다. 최 회장은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치다가도 글로벌 경영 환경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룹 오너로서의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
‘엑스포 유치전’ 최태원 회장 “3차 PT후 할수 있다 자신감”
―한 해 동안 엑스포 유치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가.
“항상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모두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서가는데 우리는 가능성이 있는 거냐’고 우려들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이에 대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일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올해 7월 3차 PT 첫 시사회를 마쳤을 때다. 처음이었고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 반응이 너무 좋았고 박수가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고는 ‘이거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 나왔을 때 약간 벅찬 느낌이 들었다.”
―이번 한국의 3차 PT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준비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경쟁국들과는 차이가 많이 날 거라고 예상을 했다. PT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오징어게임 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의 제안과 아이디어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엑스포 유치국 결정이 꼭 ‘톱(top)’에서만 이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폭넓은 접근이 매우 중요하고, 젊은 세대들까지 부산 엑스포에 호의를 갖게 되면 해당국도 여론을 반영할 거라 생각한다. 오징어게임 배경음악이 나오니까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도 ‘오징어게임이네요’라고 옆자리 사람에게 속삭였다는 말씀을 한덕수 국무총리님께 전해 들었다.”
―현재 기준으로 한국의 승리 가능성이 좀 올라간 것 같은가.
―부산의 최대 강점은 뭔가.
“부산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강점이다. 이렇게 꾸준히 조직력 있게 정부와 민간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곳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조직력과 힘이라고 본다.”
―10월 부산 엑스포와 관련해 네이버 제페토와 협업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내놓았고, 자체 메타버스 사이트인 ‘웨이브’도 시험버전을 이번 주 공개했다고 들었다.
“참가국들이 메타버스를 제시하고 솔루션과 플랫폼 얘기도 계속하고 있지만, 정말 디자인까지 해서 내놓을 수 있었던 곳은 우리뿐이다. ‘한국은 그냥 말로만 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상당히 차별화된 메시지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 메타버스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다 활용할 것이다.”
최회장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머리를 써서 에너지를 동원해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일이 조직경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리=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그룹 경영과 관련된 이야기도 듣고 싶다. 경영자로서 돌아봤을 때 올해는 어떤 해였는지.
“시기가 별로 좋지 않으니 만족스럽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좀 더 대처를 잘할 필요가 있었는데’ 같은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또 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7월 제주포럼에서 경기 침체가 향후 일정 기간 지속될 거라 전망했다. 향후 경기 전망이나 그에 따른 투자 계획이 달라진 게 있나.
“지금 전 세계는 ‘딸꾹질 상태(hiccup situation)’에 있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지만 풀릴 때까지는 기업 입장에서 답답한 상황이다. 자금이 조달되지 않아 투자를 미루는 일은 당장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미 이자율 변동이 크니 돈이 움직이지 않고 있고, 다들 투자를 멈춘 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늦어도 내년 말이면 경기가 다소 풀리지 않겠냐는 전망들이 최근 나오고 있다. 나도 빨리 풀리기를 바란다.”
―“전쟁(경제위기)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재계에 돌았다. 올해 정기 인사의 방향성은….
“곧 발표될 거라 언급이 조심스럽다. 지금까지와 비슷한 얘기지만, 현재는 그렇게 큰 변화를 일부러 가져갈 이유는 없는 것 같다.”(인터뷰는 SK그룹 각 계열사가 임원 인사를 발표하기 이틀 전 진행됐다.)
―올해 초 SK텔레콤 회장에 오르면서 주요 계열사 4곳(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의 미등기 회장직을 맡은 배경이 궁금하다.
“SK㈜의 경우 우리 그룹의 정점에 있는 회사이니 맡을 수밖에 없다. 나머지 두 회사는 다른 곳들보다 제가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면 될 것 같다. SK하이닉스는 경기 변동성에 따라 영향이 심한 측면이 있고 대규모 투자 결정을 많이 내려야 하니 제가 좀 더 잘 봐야겠다고 판단해 포지션을 맡고 있다. SK텔레콤은 이제 기존 사업 구조에서 변화가 좀 필요한 상황이라 제가 들어가서 챙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센강에는 부산 엑스포 마스코트 ‘부기’ 형상의 대형 캐릭터가 설치된 유람선이 오가며 현지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파리=뉴시스
―내년 ‘CES 2023’에서 중점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
“새로운 테크놀로지 동향과 산업 전략들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봐야 한다. 특히 이렇게 다운사이클이 찾아온 시기에는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잘 찾아내면 다음 기회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녀들이 실리콘밸리와 SK 계열사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 상담이나 대화도 많이 하나.
“어드바이스는 매일 한다. 그렇다고 제가 억지로 뭔가 시키는 건 하나도 없다. 다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좀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해 봤자 제 입장의 제 의견일 뿐이다. 그래도 뭐라도 상의하려고 오면 잘 들어주기라도 해야 하니 열심히 듣는 편이다.”
―자녀들의 경영 참여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자기들의 일이니까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에 나서는 길을 택하면 그 다음에 고생할 것도 스스로 훤할 것이라 본다. 그게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니까 어려운 일을 할 각오가 잘돼 있어야 하고, 능력도 따라야 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다. 부모로서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 진로다.(웃음)”
―좌우명이나 힘들 때 새기는 말 같은 게 있나.
“‘전화위복.’ 우리 아버님이 저한테 심어주신 하나의 DNA 같은 말이다. 아버님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분이었다. 항상 ‘어려울 때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 이걸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보면 거기서 복이 온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자꾸 화를 생각하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머리를 쓰고 여러 가지 에너지를 동원해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어려울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해 주셨으니 그 말이 좌우명이라기보다는 저의 레거시가 된 것 같다.”
파리=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