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 박래현(1920~1976)과 이중섭(1916~1956), 현대미술가 김순기(76)와 이미래(34), 양유연(37).
올 9월부터 내년 4월까지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리는 ‘제58회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초청된 한국 작가 명단이다. 카네기 인터내셔널은 1896년 설립돼 4년마다 열리는 미국 미술계의 유명 국제전이다.
양유연 작가는 다른 참여 작가들과 달리, 국제전에 초청된 게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전통 종이인 장지에 그림을 그려온 양 작가는 이번에 자신의 기존 작품 8점과 신작 3점을 내놓았다. 해외 언론에서는 “컬트 영화감독이자 시각 예술가인 데이비드 린치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우울한 색의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설치된 양유연 작품 전경. 오른쪽에 놓인 3개 작품이 이번 신작이다. 본인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 작가는 이번 초청에 대해 “좋았어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기대가 크지 않아요. 성향 자체가 그래요. 늘 최악을 생각하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마이너”라고 말하는 작가 특유의 호젓함. 이런 분위기는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양유연, 우리 집, 2010, 본인 제공
양 작가의 그림은 첫 인상은 일단 ‘어둡다.‘
대부분 검거나 퍼렇거나 잿빛에 가까운 배경. 불투명하고 탁한 색감 덕에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본능적인 두려움과 고독감이 밀려온다. 양 작가는 “순식간에 동요되는 그림보다는 무엇인지 모르겠는 감정을 일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작품에서 얼굴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려져도 그림자에 일부 가려져 있거나 표정이 없다. 그는 “내 그림은 빛과 어둠에 의해 교묘하게 숨겨지고 가려져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이미지들이 주는 감정은 뒤돌았을 때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에 양 작가의 그림 또한 서늘하고 헛헛하면서도 마냥 싸늘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양유연, 검은 물, 2015, 본인 제공
관객에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정은 양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불안정한 시선과 맞닿아있다. 그는 “그때그때의 내 삶이 그리기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분명 결핍이 있었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특별히 불우한 환경은 아니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작은 생채기일 수도 있죠. 그렇지만 제가 거기서 느끼는 아픔의 감각은 클 수 있는 거거든요.”
양 작가의 초기작이 자기 상처에 집중했다면, 그는 점차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노동자 투쟁이 바탕이 된 ‘얼룩’(2017년)처럼 다소 직접적인 소재를 다루기도 했다. 누군가의 목덜미 뒤에 남겨진 상흔을 그린 ‘자국’(2020년)처럼 타인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기도. 모두 지나치기 쉬운 사람과 순간에 작가의 시선이 머물러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양유연, 자국, 2020, 본인 제공
그래서일까.
양 작가는 “그림 앞에 망설여지는 시간이 더 잦아진다”고 털어놨다.
“그림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죄책감 같은 게 생겨요. ‘내가 함부로 그려도 될까?’ 하는 생각이죠. 그래도 그려요. 그려야 하니까요. 못 그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이 엄청나거든요.”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