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공동취재) ⓒ News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사령탑이었던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사진)이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5분까지 10시간 넘게 서 전 실장에 대한 영장심사를 진행했다.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피살된 다음 날(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경 청와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게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관련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영장심사에서 “서 전 실장은 이 씨 피살 은폐 및 월북몰이에 핵심 역할을 한 최종 책임자”라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 전 실장 측은 “은폐를 시도한 바 없고 여러 부처에서 수집된 첩보로 정책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맞섰다.
이날 영장심사는 10시간 5분 동안 진행되면서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심사 때 총 8시간 40분이란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 檢 “은폐하다 월북몰이” vs 서훈 “보안 유지는 당연”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이 씨 사망 직후인 2020년 9월 22일 오후 10시경 첩보를 통해 이 씨 사망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망 후 시신이 소각됐다는 사실을 인지한 서 전 실장이 23일 오전 1시경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보안 유지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정원 및 국방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 공유된 대북 감청정보(SI·특수정보) 등을 삭제하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회의에는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서 전 실장의 공범으로 적시한 박 전 원장, 서 전 장관을 비롯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검찰은 특히 이날 영장심사에서 이 씨가 피살 후 소각됐다는 첫 언론 보도가 나온 시점이 피살된 다음날인 오후 10시 50분이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씨 사망사실은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졌는데 국가안보실이 이를 ‘보안사고’로 판단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또 검찰은 이 씨 표류 가능성과 자진 월북 가능성을 함께 보고 받은 국가안보실이 언론 보도 이후 본격적인 월북 몰이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서 전 실장 측은 첩보의 출처보호와 신뢰성 확인을 위해 공식 발표까지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또 실무자를 포함해 200~300명이 첩보를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은폐를 시도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 전 실장 변호인은 “첩보 삭제 지시든 배포선 조정 지시든 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여러 부처에서 수집된 첩보를 기초로 한 정책적 판단에 대해 사후에 사법적 판단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 文 전 대통령 수사 여부 변곡점
검찰은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문 전 대통령은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이 사건의 가장 ‘윗선’을 서 전 실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 전 실장이 구속되면 검찰 수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1일) 낸 입장문에서 “대통령은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반면 서 전 실장 영장이 기각될 경우 문 전 대통령 조사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원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뒤 서 전 실장,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서 전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 관련자 모두 불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