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성지를 가다]〈상〉 예루살렘, 통곡의 벽 “성전산으로 이어진 수많은 계단, 직접 걸어 오르며 성전 의미 새겨”
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산의 서쪽 벽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 중인 순례객들. 벽에 이마를 대거나 의자에 앉은 채 여러 시간 기도하는 이가 적지 않다. 아래 사진은 성전산에 이르는 지하 터널에 대해 설명하는 이스라엘 문화재관리국 유발 바루흐 박사. 예루살렘=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일(현지 시간) 오후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은 노을과 조명이 어우러져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를 비롯해 다양한 옷을 입은 순례객들이 벽에 손을 마주한 채 기도하고 있다. 이방인들도 입구에 놓여 있는 작은 빵 모양의 ‘키파’를 머리에 쓴 채 명상에 든다.
기자가 14년 만에 찾은 통곡의 벽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대로였다. 순례객의 기도뿐 아니라 이슬람교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도 들렸다. 이곳은 70년 로마 군인들이 파괴한 제2차 유대교 성전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쪽 성벽의 일부다.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이유는 예수 사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많은 유대인이 죽자 밤이 되면 성벽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죄에 대한 통곡의 기도가 2000년 방랑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이뤄줄 것으로 여겼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 신앙의 상징이자 그들의 삶 속에서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이곳에서 군복 차림의 학생 3명을 만났다. 베냐후(16)라는 이름의 소년은 “군 복무를 준비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1년에 최소한 세 차례 통곡의 벽에 온다”고 했다. 기자가 “혹시 번거롭지 않냐”고 묻자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방문해 매우 익숙하다”며 “통곡의 벽은 종교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즐거운 장소는 아니지만, 이곳 방문을 피하고 싶었던 기억은 없다”고 덧붙였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랍비도 보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옷을 잡아끌지만 아버지는 벽에 이마를 댄 채 무언가를 암송하고 있었다.
지난해 4월에도 종교적 원인으로 충돌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알아끄사 내 기도 소리 때문에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의 연설이 방해받을까 우려해 연설 때만이라도 기도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원 측은 거절했다. 결국 경찰이 사원에 진입해 기도 중이던 무슬림을 몰아내자 시위가 벌어졌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이어졌다.
현지 취재에 동행한 이강근 유대학연구소장은 큰 충돌이 없을 때도 양측의 긴장은 여전하다고 했다.
“이슬람 안식일인 금요일 낮 예배 시간에는 수많은 무슬림이 성전산에 오릅니다. 각 지역에 사원이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과 결집의 의미로 이곳을 찾는 젊은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면 45세 이상인 신자만 들어가도록 해 다시 곳곳에서 항의가 이어지고요.”
이날 이스라엘 문화재관리국 유발 바루흐 박사는 예수가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행했다는 실로암 연못과 성전산에 이르는 터널 발굴 현장에 관해 소개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한복음 9장 11절)고 성경에 나오는 곳이다. 2004년 예루살렘시가 하수도 파이프 공사 중 거대한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공사는 중단됐고 고고학자들에 의해 이곳이 실로암 연못임이 밝혀졌고, 성전산으로 이어지는 2개의 계단길도 발굴을 시작했다. 바루흐 박사는 “실로암 연못에서 몸을 정결하게 한 뒤 계단을 따라 성전산을 찾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라며 “수많은 계단의 의미는 무엇을 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걸어 올라가 성전을 찾으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