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Ray-Ban
36년 만에 돌아온 매버릭은 여전했습니다. 단순한 스토리에 최첨단 슈트나 초능력도 없었지만 그에게 다시 한번 빠져들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은 클래식만의 특권이 아닐까요? 트렌드는 당장 보기 좋아도 금방 질리기 마련이니까요.
타임리스
외모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했던 대학교 시절 선글라스는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웨어로 그 지위가 막 달라졌기 때문이죠. 레이밴은 구매 리스트에 있었지만 정직하고 뻔하단 이유로 ‘레트로슈퍼퓨처(Retrosuperfuture)’나 ‘수비(Ksubi)’보단 뒷전이었습니다. 그 이후론 감각적인 국내 브랜드나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제품에 눈길이 더 갔고요.
진화가 끝난 별에선 핵융합 반응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아름다움을 탐닉하던 젊은 시절이 지났기 때문일까요. 표출과 인정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든 지금은 특별함보단 꾸준함으로 주변의 시선과 무관하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갑니다.
출처 : Ray-Ban
조종사의 눈을 보호하되 제복을 입었을 때 ‘간지’나는 보안경을 요구했다는데요, 존 매크레디는 미국 공군 소속이었습니다. 군인에게 제복과 핏은 생명과도 같죠. 바슈롬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눈부심 방지 처리를 한 특수 렌즈를 잠자리 눈동자가 연상되는 프레임에 넣었습니다. 이게 바로 ‘안티 글레어 고글(Anti-Glare Goggle)’.
여기에 들어간 짙은 초록색 렌즈, 'G-15'는 후에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렌즈 이름이 G-15인 이유는 초록색이고 가시광선을 85%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15%만 통과되겠죠?
출처 : Ray-Ban
아이콘
레이밴이라는 브랜드 론칭과 함께 바슈롬은 안티 글레어 고글의 프레임을 금속으로 바꾸고 ‘에비에이터(Aviator)’라는 이름으로 판매합니다. 아무래도 플라스틱보단 금속이 더 고급스럽죠?
1년 뒤엔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남성을 타깃으로 삼아 ‘슈터(Shooter)’도 출시합니다. 제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사냥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제품인데요, 담배를 끼울 수 있는 시가렛 홀이 브리지 사이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더불어 안개 속 시야를 확보해 주는 옅은 노란색의 ‘칼리크롬(Kalichrome)’ 렌즈도 선보였고요. 후엔 ‘그라디언트(Gradient)’ 렌즈도 만들었습니다. 렌즈 위쪽만 진하게 해서 조종간 아래쪽을 편하게 볼 수 있게 한 거죠.
출처 : Ray-Ban
제임스 딘·오드리 햅번·밥 딜런·믹 재거 등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신비로움을 더하고 그들의 스타일을 완성시켰습니다. 이를 추앙하는 이들도 많이 생겨났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70년대 후반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은 본질에 집중했던 레이밴에겐 위기였습니다. 휘황찬란한 컬러에 독특한 프레임을 찾는 이들에겐 레이밴은 퇴물 같았을테니까요. 구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죠.
출처 : Ray-Ban
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간택을 받은 레이밴은 강렬한 비트의 록 앤드 롤 같은 서브컬처와도 결합합니다. 록 앤드 롤에서 시작된 커넥션은 이제 힙합과 일렉트릭 등 여러 분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클래스
현대인의 소비는 도구가 아니라 기호를 산다는 말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내가 사는 물건은 집단과 사회에서 나의 상황을 대변한다는 것도요.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부터 톰 크루즈까지,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동일하지 않더라도 대중이 그들에게 열광한 이유는 같습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대변하는 상징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을 채우는 것이죠. 묠니르를 든다고 누구나 토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마이티 토르는 될 수 있죠. 영웅은 유일한 존재일 수 있지만, 그 사람만 영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레이밴도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자신의 세계에서 스스로 영웅이 되어보라고.
출처 : Ray-Ban
확장도 있습니다. 지난해 레이밴을 소유한 룩소티카는 페이스북(現 메타)과 함께 ‘레이밴 스토리’라는 스마트 안경을 선보였습니다. 실루엣은 웨이페어러인데, 스냅드래곤 프로세서가 들어갑니다. 무게는 5g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뿐만 아니라 스피커랑 마이크가 있어 통화도 가능합니다. 아쉽게도 국내엔 출시되진 않았습니다.
특정 직업군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패션과 테크까지 영역을 넓혀 온 레이밴. 세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매력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 매력은 오랜 시간 동안 레이밴이 지켜온 원칙과 일관성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대중의 눈치를 살피긴 보단 ‘마이웨이’를 갑니다. 유행이란 이름으로 ‘눈알가리개’를 만들지 않으니까요. 확장의 과정에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요.
출처 : Ray-Ban
클래식이냐 트렌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길었네요. 40년 넘게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는 톰 크루즈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탑건: 매버릭’ 2회차는 레이밴 쓰고 가야겠습니다. 분당에서 저를 발견하면 커피 한잔 사드리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7월 10일 발행됐습니다.
인터비즈 이순민 기자 royalb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