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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 추행 논란이 불러낸 4년 전 연극계 미투의 교훈[광화문에서/김정은]

입력 | 2022-12-06 03:00:00

김정은 문화부 차장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8)가 최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보도됐다. 그는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주연보단 조연을 도맡으며 활동한 배우였다. 그러다 일흔일곱의 나이에 만난 ‘오징어게임’으로 뒤늦게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연극계 선후배 동료들은 그를 누구보다 응원했다. 그는 인지도가 높아진 이후 각종 광고 촬영 제의가 들어와도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면 안 된다며 일부 광고는 단칼에 거절했다. 배우로서의 탄탄한 신념과 철학, 그간 무대에서 쌓은 노력이 뒤늦게 조명되며 그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도 통하는 배우가 됐다. 노배우의 설자리가 좁았던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그의 활약은 동료 노배우들의 활로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여성 A 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날의 진실’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해당 뉴스를 접하자마자 2018년 연극계를 뒤흔든 ‘미투 운동’이 떠올랐다. 당시 연극계 거장이라 불리던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 극단 목화를 창단한 오태석 극작가 겸 연출가, 흥행에 성공한 연극을 다수 제작했던 수현재컴퍼니 대표이자 배우 조재현 등에 대한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다. 이후 이들은 연극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길 떠나는 가족’ ‘백석우화’ 등 다수의 작품으로 한국적인 극 양식을 개척하고 독특한 무대미학을 구현해 굵직한 연극상을 휩쓸었던 이윤택은 극단 단원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2019년 징역 7년을 받았다. 다양한 방언을 수집해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연극 언어로 되살리고, 배우 박영규 손병호 김병옥 정은표 성지루 박희순 임원희 장영남 유해진 등을 길러낸 극단 목화의 오태석 대표는 2018년 연극계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지난달 28일 별세했다.

거장들의 미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연극계에선 조심스럽지만 양분된 목소리가 나왔다. ‘잘못으로 인해 공은 사라지고 과만 남았다’든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연기를 한다는 평단의 평가를 권력 삼아 몹쓸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연극계에는 과거부터 엄격한 상하관계와 도제식 교육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여러 문제들이 생겼다. 2018년 미투 운동 당시에도 연극계에선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더 많다”거나 “곳곳의 피해자들이 언제 용기를 내느냐에 따라 또 다른 사건이 수면 위에 올라올지 모른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 4년 뒤 뒤늦게 글로벌 스타로 부상한 오영수의 성추문 논란이 터졌다.

아무리 공을 많이 쌓아도 한 번의 잘못으로 몰락할 수 있음을 ‘거장’이라 불렸던 연극계 선배들의 사례가 보여준다. 연기예술의 기초로 불리는 연극계에서 성추문 논란은 연극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예술을 방패 삼아 범죄를 저지르는 적폐는 사라져야 한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