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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절반 “내년 투자계획 없거나 못세웠다”

입력 | 2022-12-06 03:00:00

전경련 조사… 100곳 응답



SK하이닉스의 충북 청주시 반도체 공장인 ‘M15’전경. SK하이닉스 제공


대한유화는 지난달 24일 3000억 원 규모의 스티렌모노머(SM) 생산시설 신규 투자를 보류한다고 공시했다. SM은 일회용 컵이나 포장재 등 범용 플라스틱 제품의 기초 원료다. 2019년 사업 다각화를 위해 투자를 결정했던 사업으로 2025년 준공이 목표였다. 지난해 5월 공사 보류를 결정한 데 이어 현재까지도 투자 재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런 투자 중단 및 철회 사례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기업의 48.0%가 내년도 투자계획이 없거나(10.0%)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한(38.0%)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100곳이 응답했다.

내년도 투자 계획을 세운 기업 52곳의 투자 규모에 대한 응답은 ‘올해보다 감소’(19.2%)가 ‘올해보다 확대’(13.5%)보다 많았다. ‘올해와 비슷한 수준’은 67.3%였다. 기업들은 투자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29.1%)와 환율 상승세 지속(21.3%), 고물가(15.3%) 등을 꼽았다.

SK하이닉스는 내년도 투자 규모를 올해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며 올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0%가량 줄어든 것이 결정타였다. 우선 공장 건설에 4조3000억 원이 드는 충북 청주시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M17) 건설을 보류한 게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M15X를 먼저 짓기로 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울산 NB라텍스 생산시설 증설 완공 시점을 내년 12월에서 2024년 4월로 미뤘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자재 수급이 어려워진 점 등의 문제로 당초 계획보다 4개월 정도 늦춰질 예정”이라고 했다. 현대오일뱅크가 2019년 발표했던 3600억 원 규모 신규 공장 투자 계획을 9월 중단한 것이나 한화솔루션이 1600억 원 상당의 질산유도품(DNT) 시설 투자를 철회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전경련은 또 매출액 1000대 기업 대상 조사(100곳 응답)를 통해 기업들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투자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금조달 상황 개선 시점에 대한 질문에 ‘당분간 개선되기 어렵다’는 응답이 42%였다. ‘내년 4분기(10∼12월)’가 25%, ‘내년 3분기’는 23%였다. 내년 상반기(1∼6월) 내 자금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10%(1분기 7%, 2분기 3%)에 불과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은 내년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금리가 높고 자금시장이 경색돼 투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올해 초점을 인플레이션 방어에 뒀다면 내년에는 금리 인상 속도 조절과 금융 지원 등으로 자금 시장 경색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투자의 급격한 위축에도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8월 발의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및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은 4개월 넘게 국회에 표류 중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중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두고 여야 시각차가 커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벤처업계가 요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도 1년이 넘도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방치돼 있다. 이 법안은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주식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허용하도록 해 적극적인 외부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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