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공기업에서 33년간 근무하다가 2014년 퇴직한 이모 씨(66)는 아파트 관리소장을 거쳐 최근 드론을 가르치는 강사 일을 시작했다. 국민연금 164만 원만으론 부부의 노후 생활비를 대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사 일로 70만 원가량 더 벌지만 연금과 합친 월 소득은 은퇴 전 월급의 30%에 그친다. 그는 “퇴직금은 일찍 찾아 썼고 그나마 10년 이상 부었던 개인연금을 중도에 깬 게 후회된다. 나이가 더 들면 드론 강사도 못할 것 같아 안전기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고령층의 ‘인생 2막’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고갈 위기에 놓였고 퇴직·개인연금은 덩치는 커졌지만 쥐꼬리 수익률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층은 901만8000명으로 처음 9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17.5%다. 3년 뒤엔 고령인구 비중이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한국은 은퇴부부 연금 月138만원… “70세에도 생활비 벌어야”
〈1〉연금개혁 서둘러야 재앙 막는다
은퇴부부 ‘적정생활비’ 314만원… ‘연금액 적정성’ 44국중 42위
일자리 시장서 72세까지 고된 삶
“자산 80%가 부동산… 세금 압박, 주택연금 등 부동산 현금화 필요”
중소기업 영업본부장을 지냈던 백모 씨(65)는 9년 전 퇴직 직후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했다.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아무 소득 없이 지내야 하는 ‘은퇴 크레바스(절벽)’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비 월급 180만 원으로는 생활비와 중학생 자녀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퇴직금에 대출 4000만 원을 보태 숙박 사업에 나섰다. 백 씨는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로만 연간 최소 1700만 원이 들어가 대출을 내면서까지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살기 바빠서 노후 준비라고는 국민연금 100만 원 정도 나오겠지 생각한 게 전부였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미리미리 준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대다수 고령층은 백 씨처럼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55∼64세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나이는 평균 49.3세였지만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실질 은퇴 나이는 72.3세로 조사됐다. 그만큼 한국의 노후소득 보장 체계가 미흡하다는 뜻이다.
○ “한국 연금 제도 44개국 중 38위”
지난해 55∼79세 인구 가운데 공적·사적연금을 받은 사람은 49.4%에 불과했고 월평균 수령액도 69만 원에 그쳤다. 부부 2명을 기준으로는 138만 원으로, 은퇴 이후 적정 생활비(올해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조사된 314만 원의 44%에 그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3층 연금을 제대로 준비하기 힘들었던 세대”라며 “부족한 연금에 고령층의 질 낮은 고용 문제까지 결합돼 훨씬 힘든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 “집값 올라 노후 세금 폭탄… 쓸 돈이 없어”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2년 전 은퇴한 김모 씨(62)는 매달 받는 국민연금 170만 원을 고스란히 보험료로 쓰고 있다. 지난해 암 수술을 받은 뒤 실손의료보험 등 건강 관련 보험료 지출을 크게 높인 탓이다.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집은 있는데 현금이 부족한 은퇴 세대는 주택연금 등을 통해 부동산을 현금화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세대는 ‘3층 연금’에 적립하는 돈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연금 전반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