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1〉연금개혁 서둘러야 재앙 막는다 취미로 사냥 즐기고 阿 어린이 후원… “일할 때 중산층, 은퇴 뒤 중상층 돼” 급속한 고령화에 연금재정 적자… 佛-日 등선 연금개혁 재추진 나서
호주 시드니에 사는 66세 동갑내기 부부 베리와 마거릿 퀸 씨는 10월 한 달간 유럽으로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내년엔 팬데믹으로 막혔던 해외여행을 더 자주 다니고 바다가 보이면서도 시내가 가까운 동네로 이사할 계획이다.
퀸 씨 부부가 풍요로운 노후 생활을 즐기는 건 호주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 덕분이다. 두 사람은 현재 퇴직연금 계좌에 각각 140만 호주달러(약 12억4000만 원)를 쌓아둔 ‘연금 백만장자’다. 대학교수와 시간강사로 일하다가 2018년 은퇴한 부부는 각자 연금으로 매달 5800호주달러(약 510만 원)를 받고 있다.
호주 퇴직연금은 1992년부터 모든 근로자의 가입이 의무화된 데다 연금 자산의 60%가량이 주식으로 운용되며 연 8%대의 수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퀸 씨는 “은퇴 전까지 월급 10% 이상을 퇴직연금에 넣었고 목돈이 생길 때마다 추가로 납입했다”며 “요즘 증시 하락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균형 잡힌 운용 시스템을 믿는다”고 했다.
○ 탄탄한 ‘3층 연금’… “일할 때보다 노후 더 풍족”
지난달 16일 독일 베른린에서 만난 보험사 직원 미하엘 야코비 씨는 “은퇴 이후가 오히려 기대된다”고 했다. 베를린=김지현 기자 zion37@donga.com
야코비 씨가 퇴직 후 받는 연금은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을 더해 3200유로(약 440만 원)가량. 현재 받는 월급과 별 차이가 없다. 이를 위해 매달 공적연금에 445유로, 퇴직연금에 340유로를 붓고 있다. 11세 늦둥이 아들이 야코비 씨의 은퇴 이후 대학에 가지만 정부가 학비를 지원해줘 걱정이 없다.
야코비 씨는 “연금 외에 그동안 투자한 주식과 예·적금을 더하면 오히려 노후가 지금보다 넉넉할 것 같다. 일할 땐 중산층인데 은퇴 이후 중상층이 될 수 있겠다”며 웃었다. 퇴직 후 받을 연금을 계산해보고 여유가 생긴 그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후원하는 데 매달 500유로를 쓰고 있다.
은퇴 이후 반려견들과 함께 사냥을 즐기는 뵈리예 린톤 씨가 지난달 8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자택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일찌감치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사적연금 등 ‘3층 연금’에 가입해 노후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린톤 씨는 “매달 연금 계좌로 3만6000크로나(약 450만 원)가 들어온다”며 “공적연금과 함께 개인적으로 가입해 매달 1만 크로나씩 납입한 사적연금 덕을 보고 있다”고 했다.
○ 퇴직연금으로 ‘연금 백만장자’ 쏟아져
미국 테네시주의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드웨인 스티븐스 씨(63)는 2년 후 은퇴해 딸 셋과 함께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현재 소득의 70∼80%는 유지돼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스티븐스 씨가 이런 노후를 꿈꾸는 건 미국 퇴직연금 ‘401K’ 덕분이다. 한국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처럼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401K 제도는 1981년 자리 잡았다. 2006년부턴 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 놓은 상품에 투자하는 ‘디폴트옵션’도 도입됐다.
스티븐스 씨도 20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401K에 적립금을 넣었다. 연봉이 인상되면 적립금을 늘렸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주식과 채권을 섞어가며 운용을 이어갔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올랐기 때문에 퇴직연금 수익률이 아주 좋다”며 “요즘 증시가 흔들리고 있지만 은퇴 시점을 고려하면 지금이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라고 말했다.
호주와 미국에선 퇴직연금 투자만으로 백만장자가 된 근로자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최대 퇴직연금 운용사인 피델리티 고객 가운데 퇴직연금 계좌 잔액이 100만 달러가 넘는 가입자는 6월 말 29만4000명이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도 잔액이 100만 호주달러 이상인 계좌가 지난해 말 현재 2만 개를 웃돈다.
○ “연금 개혁 다시 시동”
프랑스는 직업과 직능에 따라 42개로 나뉜 직역연금이 사실상 전 국민의 노후를 보장한다. 하지만 기금별 운용은 천차만별이다. 고소득 전문직종 연금은 흑자를 내고 있다. 반면 제조업 분야는 연금을 두둑이 지급하는 대신에 기금은 적자에 허덕여 정부가 매년 적자를 메워준다.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사는 오기노 유지 씨(79)는 건설사를 다니다가 2003년 퇴직했다. 은퇴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 한 달에 15만 엔(약 140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쓴다. 절반은 국민연금과 후생연금(퇴직연금의 일종)을 받아 충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주말 건물 경비를 하며 번 돈으로 보탠다. 오기노 씨는 “연금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나오니 다행”이라고 했다.
현행 일본 연금 제도는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개혁이 반영돼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빨라 일본 정부는 국민연금 납부 기간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베를린=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시드니=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스톡홀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