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가 원작자 허락 없이 연극으로 기획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저작권 중개를 담당하는 출판사 창비가 연극 공연 사실을 작가에게 뒤늦게 전달한 것이 알려지면서 저작권 보호에 미흡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공연은 3~4일 경기도 용인시 평생학습관큰어울마당에서 열린 ‘아몬드’ 4번째 상연(제작 극단 청년단·고양문화재단, 주최 용인문화재단)이다. 앞서 연극 ‘아몬드’는 2019년 9월, 지난해 5월, 그리고 올해 5월 등 3차례 공연된 바 있다. 당시 출판사 및 원작자의 허가를 받고 공연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 원작자·출판사의 허가를 받지 않고 연극이 올라갈 뻔한 사태가 빚어졌다.
출판사 창비 측은 10월 17일 해당 연극 기획 사실을 알게 되고 다음 날 제작 재단과 극단 측에 이에 대해 항의하고 사실 확인을 거쳐 계약 조건 전달을 요청했다. 이후 11월 29일 극단 측 계약 조건을 최종 수령하고 저작권자인 작가에게 해당 사안을 알리고 2차적 저작물 사용 허가 여부를 안내했다.
하지만 문제는 창비 측이 해당 사안이 발생했던 10월 손 작가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 작가가 모르는 사이 출판사와 연극 제작사 사이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었고 손 작가는 공연이 열리기 4일 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창비 측은 동아닷컴에 “이미 세 차례나 공연된 연극이어서 이번에 왜 허락을 구하지 않았는지 경위 파악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며 “경위 파악을 한 뒤 계약 조건 등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작가님께 뒤늦게 알려드리게 됐다. 그 점에 대해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진출처=창비 인스타그램
창비 측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저희는 소설 작품을 영화나 연극으로 만드는 것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작가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번 일을 진행하다가 2차적 저작물 관리에 있어 저작권자의 허락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간과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충실히 보호하지 못했다”며 “이 과정에서 심적 고통을 받으신 저작권자 손원평 작가님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손 작가는 창비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상연에 동의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연이 4일이 남은 상황에서 ‘작가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틀간 상연될 공연을 중지시키는 것이 순수한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했을 스태프들과 배우들, 그리고 극장을 찾을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많은 이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걸 원하지 않아 떠밀리듯 상연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손 작가는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뒷순위로 미뤄졌다”며 “출판사 편집부와 저작권부, 연극 연출자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가졌는지 여실히 드러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손 작가는 “창비는 저자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출판사로서 뼈를 깎는 쇄신과 혁신을 거쳐야 한다”며 공연 관계자들에게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해당 사안을 장기간 묵인하고 방치한 창비 관계자들에게도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극 ‘아몬드’를 연출한 극단 청년단의 민새롬 연출은 저작권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가 있었다고 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이전 공연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가 저작권과 관련해 원작자와 출판사 측에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행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