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前 노동부 장관
2일 서울 서초구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합법·불법 파업을 가려 정부가 원칙대로 대응할 때, 산업현장의 질서가 자리 잡고 노사관계도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4일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집단운송거부)이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는 시멘트 분야에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민노총은 이에 반발해 6일 행정소송과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민생고를 외면한 파업에 대해 여론이 돌아서면서 그 동력이 약해지곤 있지만 ‘강 대 강’ 대치가 쉽게 해소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넉 달 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연말 재발을 예고했던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을 2일 만나 봤다.》
―7월 화물연대가 파업을 끝냈을 당시, 연말로 파업이 미뤄졌을 뿐이라고 예상했는데….
“정부가 연간 업무계획을 세우듯, 민노총도 일 년 파업시리즈를 기획한다. 이번에 화물연대가 선봉대로 나섰고, 지하철 철도 등이 연속으로 파업을 하며 수위를 높여가려 했을 것이다. 새 정부 길들이기다. 다만 경제가 어렵다 보니 기대만큼 동력이 생기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단초는 정부가 제공한 측면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했다. 아직 조각(組閣)도 끝내지 못한 정부가 대응을 서두르다가 마치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기를 약속한 것처럼 됐다.”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두고 논란이 계속된다. 정부는 화물차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30명)와 교통사고 건수(745건)가 시행 이전보다 늘었다고 한다. 과로·과속·과적 건수가 줄었다는 화물연대의 주장과 배치된다.
―그렇다면 화물연대는 왜 안전운임제를 고집하나.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로 업무개시명령이 도입됐다는 점만 부각이 되는데, 그 이면이 있다. 바로 화물차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꿨다. 원래 이윤이 남는다 싶으면 화물차주가 늘어나고 운임이 내려가는 구조였는데, 허가제로 진입 장벽을 높여 독과점 시장이 형성됐다. 허가제와 업무개시명령을 주고받은 것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고 이번에 영구적으로 시행하자고 한다. 독과점 기업이 소비자를 무시하고 물건값 올리듯이, 독과점 시장에서 운임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 이번 집단운송거부의 본질이라고 봐야 한다.”
―화물차주의 근로자성을 두고도 정부와 민노총의 입장이 다르다.
“화물연대는 개인사업자와 고용근로자가 9 대 1 정도다. 기본적으로 화주와 차주 간 계약관계이지 노사관계로 볼 수 없다. 화주는 계약 파기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개인사업자인 차주들이 7월 파업 당시 대거 화물연대에 가입했다. 사실상 ‘○○협의회’ 같은 이익단체나 마찬가지다. 안전운임제는 일정 수입을 보장해 달라는 것인데 경기가 어렵다고 자영업자의 생계를 보장해주나. 택배기사가 수입의 하한선이 있나.”
“일단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 화물연대는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협상에 임해야 하고 정부는 일몰제 연장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파업에 대응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 안전운임제의 3년 연장을 약속했으니 이제라도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실증적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주와 차주의 이해관계를 조정한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고 자율적으로 안전운행을 유도해야 한다. 안전 속도를 준수했을 때 운행 거리와 시간, 연료 등을 계산해 산출된 비용을 표준계약서에 반영하면 된다. 운임을 법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 운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되 과적·과로·과속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끝난다고 저절로 안전해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오히려 대화와 양보가 어려워진 상황이 된 것 같다.
“건전한 노사정 관계를 위해서는 정부가 중립적인 입장에 있어야 한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정부가 사용자와 유착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그 반동으로 노동자 이익 보호에 치우치게 됐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최후의 중재자 역할을 할 만큼 정부가 신뢰를 쌓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섣불리 개입해서 노사관계가 노정관계로 치환되는 것도 문제다.”
―민노총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
“노조는 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이를 귀족노조라 부르면서 노조 자체를 부정하고 없애려고 하면 안 된다. ‘귀족노조’가 아니라 ‘노조 귀족’이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노조 간부는 회사에선 월급을 받고, 정치권과 결탁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한다. 이런 상황에선 노동시장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별 노조보다 산업별 노조로 가는 것이 낫다. 그런데 기업은 노조의 힘이 커질까 봐, 노조는 유급 전임자 자리가 줄어들까 봐 산별노조를 거부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노사관계 이중구조는 뒷면이다.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이 14%에 불과하다. 거의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로 구성돼 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완전히 소외돼 있다. 그런데도 민노총이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나. 대기업 노조는 사측과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을 한다. 노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높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교섭력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이런 양극화된 노사관계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시키고 있다. 결국 노조가 기업 내 비정규직이나 하청과 연대해야 해결된다. 대기업·정규직 노조들이 하청의 몫을 빼앗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노조 주장과 달리 산별노조 전환에 법적 걸림돌은 없다. 노조가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 없이 연대를 말로만 하는 거다.”
―2004∼2006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 현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 정부 내내 노조의 불법 행위를 방조하다시피 했다. 표가 된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으나 산업현장의 질서가 엉망이 된 것 같다. 노조 내부 거버넌스가 취약하다 보니 정치권과 결탁해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합법과 불법파업을 구분해 원칙대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장관으로서 불법파업을 용납해선 안 되고, 합법파업이라도 불법행위는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일단 파업이 발생하면 인사고과가 감점되니 공무원들이 노조를 달래려고만 했다. 2004년 공무원 평가기준을 파업 예방이 아니라 사후 관리로 바꿨다. 그해 파업 건수가 늘다가 이듬해부터는 줄었다. 진통이 있더라도 원칙대로 대응해야 산업현장 질서도 자리 잡고 노사관계도 발전한다.”
―이번 정부의 노동개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노동개혁을 언급했지만 그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개혁 방향을 정하고 점진적으로 사회가 움직이도록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이 개혁에 앞장선다는 건, 지엽적인 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어 나간단 뜻이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당연히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완화여야 한다.”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노무현 정부 시절(2004∼2006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을 맡아 2015년 9·15 노동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현재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학계 법조계 청년들이 모인 ‘일자리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