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을 받으러 찾아오는 사람인 피분석자는, 그야말로 ‘받으러’ 옵니다. 분석을 받는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고 마음의 고통을 덜어낼 해결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옵니다. 그러한 기대가 무너진다고 느끼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불만족을 표현합니다. 극단적 표현 방식은 분석을 그만두겠다는 통고입니다. 언짢은 기분을 감추고 분석을 지속해도 늦게 오거나, 왔지만 말을 하지 않거나, 분석가를 깎아내리는 말을 해서 분석과 분석가에 대해 솟구쳐 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냅니다.
정신분석은 피분석자의 기대와 달리 협업(協業)입니다. 분석가와 피분석자가 마음을 합치고 같이 노력해서 분석의 대상인 피분석자의 마음, 특히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얻은 소견을 활용하는 과정입니다. 그러한 작업에는 여러 해에 걸쳐 시간, 비용,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실력이 월등해서 단기간에 피분석자의 마음을 파악할 것으로 예측되는 분석가를 찾으면 최선일까요? 정신분석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행동하는 분석가보다는 겸허한 자세로 같이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를 지닌, 솔직한 분석가를 선택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피분석자를 잘 알게 되었다고 안심하는 순간이 분석가에게 위험한 순간입니다. 저명 분석가를 받드는 현상은, 마음의 고통을 겪는 입장으로 보면 이해하지만 성의를 다하는 분석가와 마음을 합쳐 애쓰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명망이 높은 분석가를 만나도 피분석자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거부한다면 분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집니다.
협업의 기반은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의 신뢰입니다. ‘치료 동맹’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와 국가 사이처럼 치료 목적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면 특히 분석 초기에 피분석자가 보이는 저항과 방어를 분석가가 현명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때 분석가는 비난과 공격을 받아도 끈기 있게 버텨야 합니다. 참지 못하고 피분석자에게 방어적으로 대립하면 분석은 늪에 빠집니다. 그래서 분석가가 되려면 지도와 감독을 받으면서 여러 해 동안 엄격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서 분석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피분석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분석적 태도를 지키면서 그러한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해석이라는 언어적 행위로 되돌려 줍니다. 분석 과정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가는 결심으로 간다면 피분석자의 무의식에 숨겨진 ‘마음의 지도’를 발견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분석 과정의 대표적 장애물은 피분석자의 저항과 방어입니다. 피분석자는 늘 두려워합니다. 분석이 진행되면서 애써 잊고 있던 고통이 살아나서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을 겁냅니다. 그래서 저항하고 저항이 분석을 멈춥니다. 방어도 장애물입니다. 익숙한 방어에만 매달린다면 자유로운 삶을 얻기 어렵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계속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함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정신분석은 첫째 저항 분석, 둘째 방어 분석으로 분석의 공간을 열어 갑니다.
입장이 같다고 해서 반드시 협업은 아닙니다. 피분석자는 마음의 고통을 회피하려고 갈등을 계속 숨기고 분석가는 저항을 넘어서 갈등을 탐색하는 작업을 외면한다면, 그러한 행위는 협업이 아니고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진 공모(共謀)입니다. 분석을 방해하는 짓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