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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혁한 獨-스웨덴 “韓 골든타임 놓치면 연금제도 붕괴 위기”

입력 | 2022-12-07 03:00:00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고령화-저출산 문제 심각한 한국
일하는 사회 만들어야 연금제 유지”




“연금개혁만큼은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가 미래만 보고 장기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터 리스터 전 독일 노동사회부 장관(79)과 보 쾬베리 전 스웨덴 보건사회부 장관(75)은 현지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고령화, 저출산이 심각한 한국도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연금제도 붕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2000년 전후 독일과 스웨덴의 연금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핵심 인물이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과 스웨덴은 한국보다 한참 앞선 1980년대부터 고령화 저출산 문제를 겪으며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위한 개혁에 나섰다. 스웨덴은 1998년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확정기여(NDC) 연금을 도입했고, 독일은 2001년 공적연금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정부 보조금이 결합된 사적연금(리스터연금)을 만들었다.

두 전직 장관은 한국의 연금개혁을 뒷받침하려면 노동개혁과 저출산 문제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스터 전 장관은 “고령화시대엔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연금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고 했다. 쾬베리 전 장관은 “지속 가능한 연금을 위해선 강력한 출산 장려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 바꾼 스웨덴… 덜 내고 더 받던 연금, 낸 만큼 받는 구조로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2〉선진국은 연금개혁 어떻게 했나
가입자 보험료, 가상계좌에 적립… 이자 더해 지급하는 구조개혁 단행
기대수명 늘면 지급액 줄이는 등 ‘자동재정균형장치’로 재정 안정



비르기타 팔름보리 씨(90)가 지난달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자택 발코니에 앉아 미소 짓고 있다. 그는 매달 받는 연금의 상당 부분을 이민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스톡홀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스웨덴 스톡홀름 남쪽 지구인 쇠데르말름에 사는 비르기타 팔름보리 씨(90)는 은퇴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예전 월 소득의 70%를 연금으로 받고 있다. 그는 “매달 들어오는 연금이 풍족해 생활비를 쓰고도 남는다. 이 돈을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어린이를 위해 모두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교 사회교사로 40년 넘게 일했던 팔름보리 씨는 교편을 놓은 뒤에도 20년간 동네 도서관에서 이민자 학생들에게 스웨덴어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해왔다. 그는 “이렇게 나누는 삶도 안정적인 연금제도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며 “스웨덴의 많은 은퇴자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 의회가 주도한 전면적 구조개혁

스웨덴은 1913년 공적연금을 처음 도입한 뒤 보편적 연금복지 체계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를 피하지 못하면서 1980년대부터 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1998년 연금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DB)형을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확정기여(NDC)형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에 나선 것이다. 기존에는 가입 기간 30년 중 소득이 가장 높았던 15년간 평균 소득의 60%를 연금으로 지급했다면 새로 도입된 방식은 평생 납부한 보험료를 기반으로 이자를 더해 연금을 지급한다.

전면적 구조개혁과 더불어 정부의 신속한 추진력이 연금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밑바탕이 됐다. 1991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사회민주당을 꺾고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국가 재정 안정화와 함께 연금개혁에 힘이 실렸다.

당시 개혁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했던 보 쾬베리 전 보건사회장관은 “연금 실무작업단이 출범해 실제 개혁안을 도출하기까지 2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수치만 조금씩 바꿔 나가는 ‘모수개혁’이 아니라 틀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의회에 입성한 7개 정당이 모두 연금 실무작업단에 참여했으며 양 극단을 제외한 5곳이 개혁안에 합의했다.
○ 국제사회도 인정한 스웨덴식 모델

스웨덴 연금개혁의 핵심은 ‘NDC형 소득비례연금’을 도입한 것이다. 연금 운용 방식은 가입자들이 한 해 낸 적립금을 그해 수급자들이 받는 ‘부과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가 개별 가상계좌에 명목상 적립돼 운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본인이 낸 만큼 받게 되는 식이다. 스웨덴 그네스타에서 만난 스타판 셰그렌 씨(80)는 “새로운 제도에서 충분한 연금을 받으려면 풀타임으로 더 오랫동안 일해야 한다”며 “고령자들의 근로 의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NDC형 소득비례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이 같더라도 퇴직 시점의 기대여명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진다. 기대여명이 늘면 연도별 연금 지급액을 축소하고 연금부채가 자산보다 커지면 재정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지급액을 줄이는 ‘자동재정균형조정장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또 1999년 이후 공적연금 보험료율을 18.5%로 법에 명시해 더 이상 인상되지 않도록 했다.

다니엘 바르 스웨덴연금청 사무총장은 “세계은행(WB)도 스웨덴의 연금개혁을 롤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며 “라트비아,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NDC형 소득비례연금을 도입했고 독일과 일본은 자동재정균형조정장치를 벤치마킹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국민들도 연금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얀 앙케르 스웨덴노인협회(SPF) 그네스타 지부 대표(70)는 “연금 급여가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사회 안정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보완 지속한 독일… 공적연금 줄이되 정부가 사적연금 지원




‘리스터연금’에 年소득 4% 넣으면 정부가 납입액의 최고 90% 지원
수급연령 2029년 67세로 늦추고 내년 ‘주식연금’ 도입, 재원 보완



지난달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광고회사 직원 한노 밀덴부르거 씨는 “정부 보조금과 세제 지원이 결합된 ‘리스터연금’은 공적연금과 함께 든든한 노후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베를린=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제가 ‘리스터연금’에 연간 1600유로(약 219만 원)를 넣으면 정부가 500유로 정도를 적립해줘요. 20년 뒤 은퇴하면 공적연금 1800유로 말고도 매달 800유로를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광고회사에 다니는 한노 밀덴부르거 씨(44)는 20년째 사적연금 ‘리스터연금’을 붓고 있다. 그는 연봉 8만 유로(약 1억950만 원)를 받지만 노후는 고민이다. 과거 휴직 기간이 길어 다른 고소득자에 비해 공적연금이 많지 않은 데다 이직을 많이 해 퇴직연금도 적기 때문이다.

이런 밀덴부르거 씨에게 정부 보조금과 세제 지원이 결합된 리스터연금은 노후 소득을 보완해줄 든든한 버팀목이다. 독일은 2001년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공적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또 하나의 ‘노후 안전망’인 리스터연금을 도입했다.
○ 공적연금 줄어든 자리 메운 리스터연금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2000년대 초반 심각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연금 불능’ 위기에 맞닥뜨렸다. 1990년대 55% 안팎이던 연금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유지하려면 미래세대가 내는 돈을 2배로 높여야만 했다. 독일 정부는 공적연금 역할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에 나섰다.

이렇게 도입된 리스터연금은 가입자가 연소득의 4%를 넣으면 정부가 납입액의 30∼90%가량을 지원한다. 소득이 적고 자녀가 많을수록 정부 보조금은 늘어난다.

도입 첫해인 2001년 140만 명이던 리스터연금 가입자는 2007년 1000만 명을 넘겼고 2013년부터 160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현재 48%로 낮아졌지만 독일 근로자들은 리스터연금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생애 평균 소득의 60%가 넘는 연금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디나 프로모트 독일연금공단 연구원은 “당시 연금개혁이 가능했던 건 ‘이대로 가면 연금제도가 무너진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연금을 받는 사람, 내는 사람, 정부 등 모든 주체가 부담을 짊어지는 구조로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금 수급자는 덜 받고, 납입자는 더 내고, 국가는 리스터연금 지원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 “독일 연금개혁은 계속된다”
독일 연금 제도는 이후로도 ‘재정 안정성’과 ‘노후 소득 보장’의 균형점을 찾는 방향으로 보완돼 왔다. 2004년엔 일하는 사람에 비해 수급자가 많아지자 인구구조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으로 줄이는 ‘지속가능성 계수’를 도입했다. 그러면서도 2030년까지 공적연금 보험료율을 22% 이하로, 소득대체율은 43%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해 노후 안전망 역할이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길어진 평균 수명을 반영해 법적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늦췄다. 프로모트 연구원은 “점진적 개혁을 통해 연금 건전성 지표는 개선되고 있다”며 “당초 예상과 달리 2026년까지 보험료율 인상 없이 현재 수준의 공적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연금개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내년부터 공적연금 재원을 보완하기 위해 ‘주식연금’을 도입한다. 정부예산 일부를 떼어 일종의 국가 펀드를 만든 뒤 주식 투자 등으로 운용해 공적연금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리스터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적립금을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선택 가입인 리스터연금을 의무 가입으로 바꿔 정부가 운용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최근엔 노동시장과 연계해 연금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요하네스 가이어 독일경제연구원 부국장은 “연금 재정을 탄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고용을 확대해 연금 납입자를 늘리는 것”이라며 “안정적인 연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고령자, 여성, 이민자 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스톡홀름·그네스타=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이즈니=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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