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일원 ‘황남동 120호분’의 주인은 5세기 후반 신라에 살던 신장 165cm 이상의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경상북도, 경주시와 함께 오는 8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에 걸쳐 이같은 발굴조사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황남동 120호분은 3개의 봉분이 포개진 고분이다. 2018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돼 중심분 120호분의 주변부인 120-1호, 120-2호분 조사는 지난해 완료됐다.
120호분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넣은 뒤, 그 위를 돌로 덮고 다시 흙을 씌워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봉분지름 28m로, 시신을 안치하는 주곽과 부장품을 넣는 부곽으로 이뤄졌다.
길이 380cm, 너비 165cm인 주곽에는 주검 칸과 부장 칸이 있는데, 주검 칸에는 주인공을 동쪽으로 향하게 해 넣었고, 주인공 동측에 있는 부장 칸에는 청동다리미 및 각종 토기 등을 같이 묻었다.
주검 칸에는 목관 바닥에 납작한 철 덩이쇠를 깔고 주인공을 안치했으며, 가장자리에는 석단을 놓았다. 석단 하부에 목질 흔적이 남아 있어 주곽은 목곽임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은 목과 가슴 부근에 금제 가는귀걸이, 유리구슬 가슴걸이, 허리 부분과 그 주변에 은제허리띠, 철제대도 등을 착장했다. 다리 부근에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인골 흔적이 남아 있어 신장 165cm 이상의 남성으로 추정됐다.
머리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은제투조관식과 금동투조관모가 뒤집어진 채 확인됐다. 이는 주인공 머리에 관(冠)을 착장하지 않고 부장 칸 상부에 같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금동제 말갖춤, 은장식 화살통, 운모, 각종 토기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의 축조 시기는 황남대총 북분과 천마총 사이인 금관총 단계로, 5세기 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봉분에 산모래가 사용된 점, 은제 투조관식(금속판의 일부를 톱 등으로 도려내고 남은 부분을 무늬로 표현한 관 장식)과 은제허리띠의 투조 문양이 그동안 신라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양식인 점 등이 확인돼 학술적 가치가 아주 크다는 설명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