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참여한 정혜경 대표연구위원 피해자 증언 수집해 책으로 펴내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가 되도록 쉴 새 없이 일만 했어요. 밤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습 폭탄에 떨어야 했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 실시한 조사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14세에 야하타제철소에 끌려간 이천구 씨(당시 79세)가 남긴 증언이다. 조사에 참여한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62·사진)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야하타제철소의 강제 동원 역사를 담은 ‘조선인 강제동원 기업―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선인)를 지난달 펴낸 정 연구위원은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생생한 증언이 존재하는데도 일본 정부는 피해자 명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야하타제철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징용공의 규모만 공개했다. 일본 철강통제회 등 자료엔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조선인 징용공이 2808명이라고 나와 있다. 정 연구위원은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며, 명단조차 제대로 없는 반쪽짜리 자료”라고 지적했다.
“한국 국가기록원에 있는 ‘조선인 징용자에 관한 명부’ 등을 보면 3448∼3820명으로 나옵니다. 이것도 전체의 일부분이고, 야하타제철소의 하청업체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습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강제동원 역사를 은폐하고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야하타제철소를 포함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일본 정부에 ‘유산 소개 및 안내 등에 강제동원 역사를 가진 장소라는 점을 반영하라’고 했다. 일본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현장 어디에도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은 없습니다. 이것이 세계유산의 영광 뒤에 가려진 야하타제철소의 민낯이에요. 역사에서 잊혀진 이름들을 기록하는 건 학자의 책무입니다. 생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요.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