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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가 세상 바꿀 것”… 美서 양자컴퓨터 첫 국제전시회[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12-08 03:00:00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퀀텀 월드 회의(QWC)’ 전시회 현장. 이날 전시회에는 아이온큐를 비롯한 글로벌 양자컴퓨터 주요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처럼 미국과 양자컴퓨터 기술 협력에 나선 주요 동맹국이 참여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이 기계가 세상을 바꿀 겁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퀀텀(양자) 월드 회의(QWC)’. 극저온 냉각기를 생산하는 업체블루포스에서 나온 카일 씨는 전시된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양자컴퓨터 기술 관련 국제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회에는 양자컴퓨터 분야 선두주자인 아이온큐(IonQ)를 비롯한 미국 30여 개 양자컴퓨터 관련 기업과 연구소는 물론이고 한국 일본 독일 등 10여 개국 대표단도 참여했다. 한국 전시관 정윤채 한미퀀텀기술협력센터 센터장은 “양자컴퓨터 기술의 상용화 연구가 속도를 내면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다”며 “각국 과학정책 관련 당국자뿐만 아니라 과학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까지 많은 사람이 전시관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수백 년이 걸려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풀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미래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세계 양자컴퓨터 산업을 이끌고 있는 미국은 최근 백악관에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직접 양자컴퓨터 연구와 국제 협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날 전시회에도 앤 뉴버거 국가안보회의(NSC) 사이버 및 신기술 부보좌관과 찰스 터핸 과학기술정책실 퀀텀국장 같은 백악관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상용화 속도 내는 양자컴퓨터
기존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정보단위(비트) 하나에 0이나 1만 담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양자컴퓨터는 정보단위 큐비트(Qbit) 하나에 0과 1을 동시에 담아 여러 연산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과 금융, 물류, 신약 개발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의 수를 하나씩 따지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수많은 가능성을 순식간에 계산해 최적의 금융 투자나 물류 운송 경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신약을 개발할 때도 여러 물질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그동안 정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양자컴퓨터 업계의 선두주자는 ‘이온트랩’ 방식을 도입한 아이온큐와 초전도 방식을 채택한 IBM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큐비트를 1000개 갖추게 되는 컴퓨터가 나온다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 성능을 완전히 능가하는 전환점인 ‘양자 우위’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온큐 김정상 대표는 “(이온트랩 방식으로) 2025년에는 큐비트 1000개를 갖춘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IBM 역시 지난달 9일 큐비트를 433개로 늘린 양자컴퓨터 CPU를 공개했다.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IBM도 개발 로드맵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기술 개발을 위해선 경쟁이 중요하다”며 “양자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를 능가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응용할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美 양자기술 동맹 협력 확대
미국은 양자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양자컴퓨터 기술에 투자한 미국은 2009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발표하고 국방부와 정보기관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이 제시한 양자컴퓨터 실용화 과제에 참여한 김 대표 팀(듀크대 교수 팀)은 이온트랩,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팀은 초전도 기술로 목표를 달성했고, 이는 아이온큐 구글 IBM의 양자컴퓨터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은 2018년 국가양자주도법(NQI)을 제정했다. 이 법은 에너지부(DOE)와 국가과학재단(NSF), 상무부 산하 국가표준연구소(NIST)를 양자컴퓨터 연구개발기관으로 지정하고 5년간 12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에너지부와 NSF는 각각 5개 국가연구소 및 대학연구소에 양자연구센터를 설치했고 NIST는 양자경제개발컨소시엄(QED-C)을 구성해 양자컴퓨터 기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산하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위원회’를 설치하고 직접 양자컴퓨터 개발과 응용을 나서서 지휘하고 있다.

QED-C 총책임자 실리아 머츠배커 이사는 “양자기술 분야의 특징은 정부가 기초 연구 투자를 전적으로 맡고 있고 산업계가 이(기초 연구 결과)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함께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대학 및 국가연구소와 산업계를 잇는 조직을 만들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며 “이런 양자기술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산업 분야의 양자기술 활용 사례를 확인하고 기술 격차를 해소할 로드맵을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 기술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동맹국과 양자기술 개발 협력을 위한 기구도 잇따라 설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5일 무역기술위원회(TTC) 회의를 열고 “양자 정보과학 연구 및 개발 협력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본과는 2019년 ‘양자 협력을 위한 도쿄 성명’을 채택하고 양자기술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미국 일본과 양자컴퓨터 기술 협력에 합의한 한국도 조만간 미국과 양자기술 협력을 위한 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韓, 기업 참여 지원해야”
미국이 EU 일본 한국 같은 동맹국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협력을 확대하고 나선 것은 양자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복잡한 암호체계를 순식간에 해독할 수 있게 되는 만큼 국가안보 차원에서 미국 주도의 양자컴퓨터 기술 장벽을 높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에 이어 양자컴퓨터 기술 수출 통제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버거 부보좌관은 QWC에서 “컴퓨터 암호화 기술은 매우 중요하며 잠재적으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우리 목표는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기술 상용화 연구가 속도를 내면서 한국도 주요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츠배커 이사는 “양자기술 지원을 위해선 전략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며 “한국 주요 기업들은 양자기술 상용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도 “항공기 없이도 항공산업에 뛰어들 수 있듯이 국내 기업이 양자컴퓨터 상용화 솔루션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양자기술은 원자력 산업처럼 관련 장비나 부품 같은 후방 효과가 큰 산업”이라며 “한국이 양자기술의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